“30년 만에 후원회원 세계 1위로… 아동친화 문화 조성 힘쓸 것”

[논설위원의 질문] 정갑영 유니세프韓위원회 회장

경제학자 출신인 정갑영 회장은 연세대 총장 재직 당시 일화를 들려주며 “학교 출입로 하나 만드는 데 7가지 규제를 해결해야 했다”며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기업 운영하는 분들에게 존경심이 들더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최근의 경제 여건에 대해서는 “규제는 많고 이슈마다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경제 활성화 생태계가 조성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현규 기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유니세프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긴급구호 물자를 지원한 이후 43년간 한국 어린이의 건강한 성장을 도왔다. 농촌 영양개선 사업, 모자보건 및 질병퇴치 사업, 심지어 교사 훈련과 교과과정 현대화에도 역할을 했다. 1993년까지 한국을 지원했던 유니세프는 1994년 1월 한국위원회를 설립했다.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던 수혜국 시대를 마감하고,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해 1570억원(약 1억1500만 달러·1370원 환율 기준)을 모금했다. 새로운 방식의 모금을 시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확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정갑영 회장을 지난 1일 서울 창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제학자로, 대학 총장(그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연세대 17대 총장으로 재직했다)으로 일했는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맡게 된 계기는.

“퇴임 후 사회공헌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경제의 기본은 빈곤 문제 해결인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매년 출생하는 아이들의 3분의 1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데 그 아이들 중 상당수는 식량과 물, 백신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베풀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점이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 개인회원 숫자가 가장 많다는 게 놀랍다.

“유니세프 회원국이 190여개국인데 도움을 받는 나라와 기금을 모아 도움을 주는 나라로 나뉜다. 기금을 모아 도움을 주는 나라는 33개국인데 이 나라엔 국가별 위원회가 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된 건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994년 33번째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됐는데 이후 30년동안 개인회원이 50만명이 됐다. 개인회원 숫자는 세계 1위다.”

-인구가 훨씬 많은 나라도 있고, 기부문화가 정착된 나라들도 많은데.

“50만명이면 어린이와 노인 등을 제외했을 때 우리 전체 국민의 3% 가까이 되는 숫자다. 모금액 규모도 세계 5~6위권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다음이고 환율 등에 따라 영국과 순위가 바뀐다. 개인회원의 월평균 후원액은 3만원 내외지만 숫자가 많다보니 적지 않은 금액이 된다.”

-기부문화가 정착된 것인가.

“풀뿌리 기부문화는 세계적 수준인데 상대적으로 기업 후원 비중은 적다. 유니세프는 정부나 공적부문의 후원을 받지 않아 개인회원과 기업 후원이 전부인데, 기업 후원 비중은 5~6% 정도에 불과하다.”

-예상보다 더 적은 수준인데.

“인식이 미흡한 측면도 있고, 홍보효과 등을 감안하는 분위기도 있다. 대기업은 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큰 금액을 내놓는데 주로 정부 쪽으로 한다. 조금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유니세프가 후원 기업을 까다롭게 거르는 과정도 영향을 미친다. 전쟁 물자나 마약, 술, 담배를 생산하거나 부정적 이슈와 관련된 기업의 후원은 받지 않는다.”

-디지털 방식, 굿즈 활용, 거리모금 등 다양한 기부 캠페인을 시도했다.

“여전히 우리의 제일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기부문화 확산이다. 그동안 새로운 캠페인으로 다양한 기부의 예를 제시했는데 최근에는 유산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곧 어린이날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를 위해 하는 일은.

“아동친화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아동친화 도시 선정이 대표적인데 지방자치단체의 아동 예산 비중과 아동을 위한 조직, 시설 등을 어느 정도 갖췄는가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현재 92곳의 지자체가 아동친화 도시로 유니세프 인증을 받았다. 아동친화 기업 캠페인도 비슷한 맥락이다. 올해부터는 아동 정신건강 개선 프로젝트도 벌이고 있다. 디지털이 남용되는 환경에서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과 주거, 육아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교육이 핵심이라고 본다. 공교육이 다양한 아이들을 다 보듬지 못하니까 모두 불만이다. 지방 부모들은 애들을 다 수도권으로 보내려 하니 집값 문제가 커지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은데 그럴 자신이 없으니 애 못 낳겠다 그러고.”

-다양한 개혁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연금, 노동, 의료 등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많은데 교육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 교육 개혁의 목표는 하나다. 아이가 어떤 여건에서 태어나도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잠재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이다. 지금은 국민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의료개혁도 그렇고, 개혁은 참 쉽지 않다.

“전문 지식 집단의 역할이 최근에 확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정책이 제기되면 전문가 집단과 학자들의 논의 과정을 거쳐 대체로 합리적인 쪽으로 의견 수렴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정책이든 다 여야 대변인 선에서 정리된다. 문명사회로 간다는 건 전문 지식을 활용한다는 건데 예전보다 퇴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의료 개혁도 전문 지식 집단이 역할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을까.”

-올해 30주년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특히 힘쓸 부분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종교계 쪽에 더 다가가려 한다. 이미 다양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 교회와 올해는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 기부문화 확산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불교 등 다른 종교나 기업과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연계한 마라톤대회 개최 등도 계획하고 있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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