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전체

[태원준 칼럼] 이란의 ‘불꽃놀이’ 공습, 그 막전 막후

태원준 논설위원


99% 요격된 드론과 미사일
전면전 재앙 막기 위해
실패토록 치밀히 설계된 작전

확전의 진짜 위기 조성한 건
사실상 이란 영토인 영사관을
미국 몰래 폭격한 네타냐후

전쟁을 계속해 권력 지키려는
정치인 한 명의 사심이
세계 경제·안보를 망치고 있다

이란의 공습은 한바탕 불꽃놀이 같았다. 현란한 장면이 연출되지만, 아무리 터져도 다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300기 넘게 퍼부었는데, 99%가 밤하늘에 볼거리를 남기며 요격됐고 극히 일부만 사막에 떨어졌다. 외신에선 ‘실패하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작전’이라거나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믿고 벌인 공습’이란 관전평이 나왔다. 이 정도면 쟤네가 막아내겠지, 하면서 수위를 조절해 쐈다는 것이다.

1700㎞나 떨어진 이란 본토에서 발사한 것부터 그랬다. 이란의 샤헤드 드론이 본토에서 이스라엘까지 날아가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정말 타격을 입히려 했다면 이스라엘 코앞의 레바논 헤즈볼라 기지를 활용했어야 한다. 더욱이 드론,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순으로 속도가 느린 것부터 쐈다. 드론을 먼저 보내 방공망을 교란하는 전략인 척했지만, 이스라엘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요격을 준비하도록 “우리 이제 쐈다”고 알려준 셈이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거짓 철군까지 해가며 노렸던 기습의 효과를 이란은 완전히 배제한 채 이 작전을 설계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는지 72시간 전 주변국에 공습을 통보했고, 드론과 미사일이 이스라엘에 닿기도 전에 유엔 대표부를 통해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 이란은 전면전을 원치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미국의 제재에 경제가 망가진 데다 억압 통치에 반발하는 민심을 간신히 눌러놓은 터였다. 세계가 중동의 확전을 걱정했던 4월 13일 밤의 공습은 거꾸로 확전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중동전쟁의 진짜 위기 상황은 이보다 10여일 전, 4월 1일 벌어졌다.

그날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당했다. 건물이 완파해 이란군 장성 2명을 비롯한 16명이 죽었다. 이 정밀 타격은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헤즈볼라 폭격과 차원이 달랐다. 영사관은 이란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다. 이란 영토를 공격한 거나 다름없었고, 게다가 너무 고위 인사를 죽였다. 양국의 수십 년 ‘그림자 전쟁’에서 서로를 직접 공격하지 않던 암묵적 레드라인을 넘어버린 것이다. 아주 의도적으로, 그것도 중동 확전을 누구보다 꺼리는 최대 우방 미국이 모르게.

영사관 폭격 이틀 뒤 미국 국방장관이 이스라엘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거칠게 따질 때(왜 사전에 알리지 않았냐고), 스위스 채널을 통해 이란의 메시지가 미국에 전달됐다.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매개로 오간 양국의 대화, 간간이 알려진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너희가 시켰나”(이란) “우린 몰랐다”(미국) “이건 선을 넘었다” “참아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전면전은 안 된다”…. 결국 이란이 확전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게 4월 10일이었다고 한다.

이란은 본토에서 직접 쐈다는 상징성을 살리되 실제 타격은 주지 않는 ‘슬로모션’ 공습을 택했고, 미국·영국·프랑스가 이지스함·전투기·레이더를 보내 이스라엘이 차질 없이 요격하게 도왔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가자전쟁을 규탄하던 요르단도 영공을 지나는 이란 드론을 격추했다. 겉으로는 서방이 이스라엘과 힘을 합쳐 이란의 공습을 막아낸 듯 보이지만, 내막은 이스라엘이 불붙인 확전의 도화선을 서방과 아랍과 이란이 합심해 밟아 끈 거였다.

전시내각 체제인 이스라엘에서 이란 영사관 폭격의 버튼을 누른 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일 수밖에 없다. 군인 시절 그림자 전쟁을 수행했고 최장수 총리로 지휘해온 이가 그 파장을 몰랐을 리도 없다. 그는 왜 미국을 물 먹이면서까지 이 위험한 불장난을 벌였을까.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마스 공격을 예측도 방어도 못한 책임, 인질을 구하지 못한 책임, 민간인 학살에 가까운 전쟁 방식을 고집한 책임…. 지금 그의 지지율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전쟁 중이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쟁이 멈추면 실각할 테고, 그것은 숱한 책임을 묻는 성난 민심과 과거 부패 혐의의 심판대에 서게 됨을 뜻한다.

자기가 살려면 권좌에 계속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섬뜩한 공식이 성립됐다. 그래서 휴전을 마다하고, 라파 공격을 끝내 강행하려 하고, 심지어 대이란 확전의 방아쇠마저 당기려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운명과 중동 안보와 세계 경제가 그의 머릿속에 든 저 공식에 휘둘리고 있다. 사심 가득한 정치인 한 명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하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