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사전투표 조작설… “실체는 없다” [팩트체크]

부정선거 음모론

21대땐 훼손 투표지 논란됐지만
출력과정 발생한 불량 용지 판명

입력 : 2024-04-08 00:03/수정 : 2024-04-08 00:03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7일 25개 관내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를 실시간 촬영 중인 CCTV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사전투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 4·10 총선부터 전국 모든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에 CCTV를 설치해 24시간 촬영하고 일반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한형 기자

4·10 총선을 앞두고 서울 부산 등 전국 사전투표소 40여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구속된 40대 유튜버는 “부정선거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2013년 도입된 사전투표 제도는 해마다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일부의 시선이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22대 총선에서도 본투표(10일) 이후 선거 결과에 따라 부정선거 의혹이 분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대법원이 2022년 7월 각종 부정선거 의혹에 “실체가 없는 주장”이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고, 양당이 모두 “안심하고 사전투표를 해 달라”고 독려하고 나섰지만 일각의 의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7일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로 부정선거 관련 주장을 반복적으로 찾아보고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최근 수년간 음모론 형태로 이어져온 부정선거 의혹의 사실관계를 다시 한번 따져봤다. ‘사전투표율 조작’ ‘대리투표’ 등 의혹은 21대 총선 등 과거 선거에서도 제기됐지만 법원은 당시 투표지에 대해 전수조사까지 벌인 끝에 “조작이나 부정선거 정황은 없었다”고 판정했다.

21대 총선에선 색상이 변하거나 귀퉁이 등이 일부 훼손된 투표지가 발견돼 ‘투표지 위조’ 논란이 일었다. 누군가 대규모로 위조한 투표지를 사전투표함에 넣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논란이 된 투표지 중 122장과 더불어 투표용지 제조사(한솔제지·무림페이퍼), 투표지를 출력하는 프린터와 잉크 등을 감정했다. 그 결과 투표소 출력 과정에서 종이가 겹치거나 잉크 노즐 등의 상태에 따라 발생한 불량 용지로 판명됐다. 대법원은 “누군가 투표지를 위조했다면 굳이 이렇게 (다르게) 만들어서 문제의 소지를 남길 이유가 있겠느냐”고 판시했다.

사전투표가 부정선거 의혹의 주요 대상이 되는 건 개표 시기까지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사전투표함과 투표지에 부정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다.

이에 선관위는 이번총선부터 투표지를 일일이 손으로 확인하는 수검표를 추가하는 등 절차 개선에 나섰다. 일각에서 위조 가능성을 주장하던 사전투표지 일련번호도 QR코드(2차원 바코드)에서 막대 모양의 1차원 바코드로 바꿨다.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도 CCTV로 촬영해 시·도 선관위 청사 내 대형 모니터로 24시간 공개한다.

누군가 사전투표를 조작한다?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에는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여야 득표율 격차’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21대 총선과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 득표율은 본투표보다 사전투표에서 크게 높았다. 일부에선 ‘사전투표에 부정행위가 작용한 근거’라고 주장한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사전투표 65.68%, 본투표 48.46%를 득표했다. 반면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사전투표 30.61%, 본투표 47.12%를 기록했다. 두 후보는 본투표에서 1.34% 포인트 차로 박빙이었는데, 사전투표에선 35.07% 포인트로 차이가 컸다. 이것이 수상하다는 주장이다. 21대 총선도 민주당 지역구 후보(253명)의 평균 사전투표 득표율이 본투표보다 10.7% 포인트 높았다. 야당 성향 유권자가 사전투표를 많이 한다는 해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도한 확대 해석이라고 일축한다. 투개표 절차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통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정치적 판세에 따라 특정 정당 후보자에 대한 사전투표 득표율이 당일투표(본투표)에 비해 높거나 낮은 현상은 재보궐선거와 대선, 지방선거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라며 “이례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발표하는 투표자 수가 실제 투표자 수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선관위가 실제 투표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투표했다고 거짓 숫자를 발표하는데, 이는 누군가 대리투표를 하거나 위조 투표지를 넣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다.

선관위는 이런 의혹에 “투개표 절차상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사전투표는 거주지에서 투표하는 관내투표와 거주지 외 지역에서 투표하는 관외투표로 나뉘는데, 선관위는 두 방식 모두 신분증과 지문을 스캔해 보관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스캔한 신분증 이미지는 30일간, 투표지 이미지는 선거 임기 만료 시까지 보존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신분증 이미지 등을 스캔하고 투표용지를 발급하면 곧바로 전산에 반영돼 홈페이지에 실시간 공개된다”며 “본투표와 절차상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가 투표소 CCTV를 가려서 부정선거를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선관위가 투표소 내 일부 CCTV를 가리고 내부 촬영을 제한하는 것은 맞다. ‘투표의 비밀은 보장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167조에 따른 조치다. 대법원은 “사전투표지 발급과 투입, 사전투표함 인계 등 모든 과정에서 각 정당이 추천한 참관인 등 수많은 인원의 참여와 감시가 보장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부정선거 의혹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선관위의 거듭된 선거 관리 부실이 이런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대 대선 사전투표에서 발생한 ‘소쿠리 투표’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기표한 투표지를 플라스틱 소쿠리, 쇼핑백 등에 담아 운반하는 등 부실한 선거 관리 행태가 부정선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노정희 당시 선관위원장은 사전투표일 출근도 하지 않았고, 선거 관리 부실 논란이 확산하자 자진 사퇴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리 부실은 마땅히 개선해야 할 사안이지만 부정선거 주장과는 별개 문제”라고 해명했다.


‘63대 36 음모론’ 또 나타날지 주목

일각에선 21대 총선 사전투표에서 논란이 된 ‘63:36 음모론’이 22대 총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지 주목한다. 21대 총선에서 서울·인천·경기 지역 사전투표 결과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시·도 평균 득표 비율이 모두 63%대 36%로 일정하게 나타났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누군가 사전에 조작한 투표 결과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63%대 36% 비율은 당시 253개 선거구 중 17개 선거구(6.7%)만 해당하는 결과였다. 대법원은 “부분적 통계를 확대 해석해 전국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21대 총선에만 126건의 부정선거 관련 소송이 제기됐는데, 그 가운데 법원에서 인정된 사례는 ‘0건’이었다.

양당은 부정선거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말부터 부산과 충북·강원도 등 전국을 돌며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무조건 투표해 달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투표 불신을 조장하고 투표 열기를 막아선 안 된다”고 했다.

“음모론, 선거 영향 미미”

선거철마다 음모론으로 대표되는 진실 공방이 반복된다. 다만 선거철 음모론이 실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3개월 후 치러진 5회 지방선거에선 ‘잠수함 침몰설’ ‘좌초설’ ‘기뢰 폭발설’ 등 각종 음모론이 난무했다. 이로 인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북풍’을 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야당인 민주당이 광역자치단체장 7곳, 한나라당이 6곳을 가져가는 등 야권 승리로 끝났다.

2012년 18대 대선에선 유신헌법에 반대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규명 논란이 불거졌다. 박정희정부 시절 과거사 논란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박 후보는 절반이 넘는 51.6%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태일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정치에서 음모론과 선거의 연관성’ 논문에서 “음모론이 선거 변수로서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선거철 음모론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몬머스대학은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 정부의 비밀요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응답자 1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중 73%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2020년 대선 사기 음모론’을 믿는다고 답했다. 이준한 교수는 “음모론을 신봉하는 일부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며 “대다수 중도층 유권자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팩트체크팀=양민철 박재현 박성영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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