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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대 최고 투표율의 유권자 동력, 통합의 정치로 담아내야

극단적 대결의 진영선거 구도에선
‘혐오 투표’ 등 민심 왜곡 초래 우려
총선 끝나면 화해의 물꼬 틔워내길


제22대 총선의 사전투표율(31.3%)이 역대 총선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대선(36.9%)에는 못 미쳤지만 처음 30%를 돌파하며 4년 전 총선(26.7%)을 훌쩍 넘어서자, 높은 투표율의 원인을 찾는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도입 10년째를 맞은 사전투표제가 편리함을 인정받아 정착한 점, 일각에서 제기됐던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이 상당부분 해소된 점, 비례대표 정당 투표로 선택지가 넓어진 점 등을 꼽았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요소를 뛰어넘어 여야 지지층 결집이 대선에 버금가는 사전투표율의 결정적 배경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보수·진보 지지층을 향해 경쟁적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했고, 높은 투표율을 가리켜 각각 ‘이·조(이재명·조국) 심판’과 ‘정권 심판’의 열기라는 상반된 주장을 폈다. 여야가 극한 대결을 벌였던 지난 대선의 진영 선거 양상은 이번 총선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유권자가 선거에 높은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하는 것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는 소중한 에너지다. 그런데 이를 담아내야 할 우리 정치가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술지 ‘한국정치연구’ 최신호에 실린 ‘한국 유권자들의 정서적 양극화와 투표 선택’ 논문은 2012년 이후 세 차례 대선의 유권자 의식 조사 결과를 분석했는데, 지지 정당을 좋아하는 정도와 상대 정당을 싫어하는 정도가 갈수록 극단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 정당을 단순히 지지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싫어하거나 미워한다는 유권자 비율이 10년 새 30% 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런 양극화는 투표 행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당이 좋아서’보다 ‘저 당이 싫어서’ 투표에 참여하고 특정 후보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가 계속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는 모두 유권자의 호감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비전과 정책을 어필하지 못한 채 상대의 비호감을 부각시켜 반사이익을 챙기는 ‘누가 더 나쁜가’의 대결로 선거 기간이 채워졌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여야에서 들려오는 말은 하나같이 “심판해 달라”는 것뿐이다. 여당은 거야(巨野) 범죄자들을,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를 심판해 달라면서 ‘저 당이 싫어서’ 투표하러 가는 발길만 재촉하고 있다. 이렇게 혐오를 부추기는 양극화 정치 때문에 투표율이 높아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대선의 극단적 진영 선거 이후 당연히 거쳤어야 할 정치적 치유 과정을 생략한 채 대결 정치로 일관해온 후유증일 것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결과가 어찌되든 화해의 물꼬를 틔워야 한다. 통합의 정치를 위한 노력을 또 외면한다면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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