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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자유무역 보루 WTO의 힘겨운 여정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13차 각료회의 빈약한 성과
분쟁해결 절차,수산보조금 등
이번에도 합의 도출 실패

회원 166개국으로 늘었지만
성과내기 갈수록 힘들어져

다자기구 불신·무용론 극심
통상국가 한국에 위험 신호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제1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관심을 모았던 분쟁 해결제도와 수산보조금,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회의에 앞서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 약간의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WTO의 한계를 재확인한 자리로 판단된다. 다자기구에 대한 불신과 무용론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WTO는 각료회의에서 성과를 도출해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WTO의 앞날은 안개 낀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가고 있는 낡은 수레 같다. 내년이면 창설 30주년을 맞는 WTO의 현주소다.

상소기구제도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미국이 2017년 이후 의도적으로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거부해 형해화되어 버린 분쟁 해결절차는 이번에도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올해 말까지 가시적 성과를 내기로 합의했다는 각료 결정이 나왔지만, 시한 내 합의가 가능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전향적인 조치가 나올지 의문이다.

많은 기대를 모았던 수산보조금 2단계 협상도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지난 12차 각료회의에서 1차 타결을 끌어내 그나마 합의의 가능성이 있었던 수산보조금 분야는 이번에 각국의 과잉생산능력과 남획을 줄이기 위해 국가 보조금을 서로 자제하자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농업보조금 감축 분야도 진전이 없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자상거래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이른바 전자상거래 모라토리엄은 1998년 이래 여러 번 연장되면서 무관세가 유지됐는데, 이번에 14차 각료회의 또는 2026년 3월 31일 중 더 이른 날짜까지만 이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 종료 시한이 명시됨으로써 2년 뒤 다시 모라토리엄 연장을 위해 특별히 노력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칠레와 함께 공동의장으로 활동한 개발을 위한 투자원활화(IFD) 분야는 개도국에서 투자가 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진행되던 사안이다. 이것은 WTO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아니라 원하는 일부 국가만이 참여하는 복수국간(plurilateral) 협정 절차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 이 분야는 166개 전체 회원국 중 124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공동각료 선언을 발표하고, 다자간 협정인 WTO 협정에의 편입을 공식 요청하였다. 완전 편입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합의를 이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회의 첫날 최빈개도국인 코모로와 동티모르가 WTO 가입을 승인받아 WTO 회원국은 166개로 늘어났다. 회원국이 세계무역의 98%를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세계무역을 관장하는 다자기구로서 WTO는 손색이 없다. 하지만 모든 회원국이 합의하는 성과를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합의할 수 있는 의제를 찾아내는 것도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단계에까지 다가간 느낌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제 WTO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각료회의는 먹을 것이 없는 걸 다들 알아서 소문도 잘 나지 않는 잔치로 전락했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었던 각료회의가 4만여명의 반세계화 시위대의 격렬한 항의로 열리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가. 2005년 각료회의 시 홍콩 앞바다에 뛰어들어 항의하던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전투적 시위를 기억하는가. 2년마다 열리는 WTO 각료회의는 당시 전 세계 정부, 언론, 사회단체가 모두 주목하는 말 많고 탈 많은 회의였다. 이제는 기대치가 낮아 관심을 두지 않는 국제회의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자간 무역투자 자유화 협의체로서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WTO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WTO 의제들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영역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산보조금 2단계 협상에서 얘기되는 면세유를 포함해 각종 보조금 감축 여부는 우리 수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네바의 동향에 지극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통상국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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