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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덜 해로운 담배는 없다… 전자담배도 유해물질 덩어리

[담배 없는 세상] 전자담배 위해성 감축 맞나

게티이미지뱅크

담배회사들 ‘금연 보조제’ 마케팅
WHO, 궐련과 동일 규제 조치 권고
15개국은 ‘궐련형’ 판매·유통 금지

담배 회사들은 전자담배가 궐련(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워서 금연 보조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위해성 감축(Harm reduction) 마케팅’ 전략이다. 한 외국계 담배회사는 지난해 액상 전자담배 신제품을 출시하며 자체 실험 결과 독성과 유해성이 감소했다고 홍보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객관적·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전달로 소비자를 오도하고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연초를 태우는 제품이 아닌, 가열해서 찌는 방식으로 유해물질 배출을 크게 줄였다고 강변한다.

WHO “궐련과 동일 규제 필요”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당사국(한국 포함 182개국) 6·7차 총회와 지난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니코틴 함량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액상 전자담배와 기기 장치, 액세서리에 대해 담배 규제 조치의 적용을 권고했다. 7차 총회에선 “정부 기관의 승인이 없는 한, 금연 보조제로서 액상 전자담배 효과에 대한 명시적·암시적 주장을 금지하며 상대적 안전성과 중독성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고 천명했다.

8·10차 총회에선 궐련형 전자담배와 기기 장치류에 협약 모든 조항의 포괄적 적용을 촉구했다. 8차 총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를 가열할 때 니코틴과 독성 화학물질을 포함한 에어로졸(담배 연기에 해당)이 생산되고 독성 배출물 중 많은 것이 암을 유발한다”면서 “궐련보다 덜 해롭다는 충분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열린 10차 총회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의 주요 마케팅은 ‘위해성 감축’ 주장으로, 해당 담배로 갈아탄 사람이 기존 궐련 흡연자보다 담배 관련 질병 위험이 낮은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 2022년 4월까지 확인된 임상시험 40건 중 29건이 담배업계와 연관돼 있어 근거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국내 법원 “덜 해로운 담배 존재 안 해”

이런 기류는 최근 국내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자담배 사용자 단체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제작한 담뱃갑 경고 그림과 금연 광고가 흡연권·평등권 등을 침해하고 손해를 끼쳤다며 2022년 10월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건강증진개발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원고는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건강을 덜 해치며 니코틴 대체재 또는 금연 보조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전자담배 유해성 관련 국내외 연구 결과와 정부의 담배규제 정책, WHO의 권고, 대한금연학회 성명서 등을 종합 검토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과학적 검증에 기초해 건강에 덜 해로운 담배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정부에서 국민에게 덜 해롭다는 이유로 권장할 수 있는 담배 제품 역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국제 공인 학술지 발표를 통해 전자담배의 건강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연구들은 다수 제시됐다. 미국 서든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2021년 11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액상 전자담배의 화학 성분이 세포 기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만성 염증을 일으키고 암뿐 아니라 심혈관, 호흡기, 신진대사 관련 질병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영국 버밍엄대 연구진은 2018년 ‘영국의학협회지(BMJ)’에서 “전자담배 액상에 포함된 유해물질들이 가열돼 증기가 됐을 경우 세포 독성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인체 세포에 전자담배 증기를 가했을 때 반응이 일반 담배 연기를 가했을 때와 큰 차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국립보건과학연구소는 2022년 6월 ‘독성학 리포트’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생성된 에어로졸 추출물은 폐암 줄기세포의 증식을 유도했다. 해당 에어로졸에는 폐암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해로운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폐암 발병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고 결론지었다.


한국, 액상 전자담배 규제 제일 느슨

위해성 감축 개념은 일반 담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담배회사들이 비연소, 가열 담배 등 차세대 담배를 개발·판매하면서 새롭게 도입한 마케팅 전략이다. 궐련 대비 신종 담배의 위해성이 대폭 감소해 흡연자의 건강과 금연에 도움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담배들 역시 체내에 니코틴이라는 중독성 높은 성분을 끊임없이 흡수시키는 제품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궐련형, 액상 전자담배 사용자의 80% 이상이 궐련 등 2가지 이상 제품을 중복해서 흡연하고 있으며 이 경우 흡연자의 니코틴 의존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 니코틴의 중독성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이 제품들을 접한 사람이 성인이 돼 궐련과 같이 명백하게 해로운 제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금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한금연학회 고문인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일 “위해성 감축 주장은 담배 회사와 연관된 일부 단체나 학자들이 주로 동조하고 있으며, WHO는 물론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걸 최근 해외 학회에서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대한금연학회도 “이 제품들의 장기적인 건강 영향과 위해성, 그리고 개인이 아닌 인구 집단 수준의 위험성은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호주와 싱가포르 브라질 이란 태국 등 15개국은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의 판매·유통을 금지하고 있으며 한국 등 다수 국가는 담배 제품과 동일하거나 제한적인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또 싱가포르 태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34개국은 액상 전자담배의 판매를 금하고 있다. 액상 전자담배와 관련해, 한국은 규제가 가장 느슨한 국가 중 하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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