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만시지탄 의료 체계 개혁


의료계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자연에선 봄 기운이 완연한데, 의료계는 아직 한겨울이다. 의·정 극한 대치로 의료 공백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국민과 환자들의 몸과 마음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전공의와 전임의에 이어 최후의 보루인 의대 교수들마저 조만간 집단사직에 나서겠다니 환자와 가족들은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진정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생각한다면 의대 교수들은 환자 곁을 끝까지 지키면서 젊은 의사들의 복귀를 설득하는 것이 옳다. 정부도 의료계와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았으면 한다. 아울러 보다 구체성을 띤 필수·지역의료 지원책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비정상적인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해법들을 추가로 내놓고 가능한 것은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 의사들의 마음을 돌릴 최소한의 명분이 선다. 현재로선 양쪽 다 출구가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파국을 막으려면 마지막까지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모두가 우려하는 ‘잔인한 4월’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빚어진 의료 공백은 아이러니하게 한국 의료체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필수의료의 저수가 문제, ‘빅5’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 중소·지역종합병원의 취약성, 동네의원의 고사 위기 등으로 대표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기저에는 오랫동안 고착화된 기형적인 의료전달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되면서 의료 이용체계가 정립됐다. 30병상 미만 동네의원은 경증 외래 환자, 30병상 이상 병원과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주로 입원 환자, 종합병원 중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상급병원은 중증 환자를 맡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료전달체계는 의료기관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각에선 1998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진료권 제도(정해진 진료권역에서만 환자 진료 제한)가 폐지되면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KTX와 SRT가 뚫리면서 지방 환자의 빅5 병원행은 가속화됐다.

현재 유일한 규제라 할 수 있는 진료의뢰서마저 환자 측의 발부 강요 등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진료의뢰서 남발은 결국 큰 병원 외래 진료를 증가시키고 동네 병의원의 기능은 점점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은 2015년 메르스 같은 대형 감염병이 닥쳤을 때나 몇 차례 의사 파업으로 인한 대형병원의 의료 공백이 있었을 때도 노출됐다. 그때마다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정부가 개선책을 찔끔찔금 내놨지만 미봉책에 그쳤다. 그간 의료체계 개선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의대 증원에 의사들이 이토록 저항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의료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이번만큼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고치겠다고 한다. 과잉 진료와 필수의료의 소외를 낳은 행위별 수가제를 손 보고 상급병원을 중증·필수의료 전문의 중심으로 만들고, 의료체계의 허리 격인 중소·전문병원을 지원하는 등 대책을 연일 내놓고 있다.

‘국민 주치의제 도입’ 같은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동네의사들이 주치의가 돼 평소 환자의 건강 상태, 여행력 등을 파악하고 중증질환 입원 치료가 필요하면 상급기관으로 환자를 의뢰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의료 쇼핑을 방지하고 경증 환자의 큰 병원 쏠림을 막을 수 있다. 고령화 시대 진료비 증가를 막을 방법이기도 하다. 의료체계 개선책들은 수 년에 걸쳐 안착되는 것이 중요하다. 조만간 가동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들이 논의되길 기대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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