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들 하지만 현실에선 하나의 틀로 가두려는 욕망과 하나의 색을 강요하는 시선들이 우리의 삶을 괴롭힌다. 자기 기준과 다르면 다짜고짜 ‘틀렸어’라며 비난하고, 자기 틀에서 벗어나면 내 편이 아니라고 배척한다. 나와 우리만이 옳다는 하나의 잣대를 만들어 놓고 틀 밖의 사람들을 향해 비난하고 욕을 한다. 미리 정해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하나의 색으로만 보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은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 가두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흔히 까마귀는 재수 없는 새라는 편견이 있어서 까마귀를 싫어하고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는다. 까마귀는 멀리서 보면 그 이름과 같이 까맣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하면 실제로는 검붉은 까마귀가 많으며 푸른빛을 띤 까마귀도 적지 않다. 또 날아가는 까마귀에 햇볕이 비치면 자주색으로 빛나다가 얼핏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그리하여 연암은 말하기를 “내가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한다. 사물은 본래 정해진 색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버리는 것이라 연암은 말한다. 심지어 보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에 미리 까맣다고 판정해 버린다고 탄식한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고서 주워들은 정보로 미리 판단하는 태도를 선입견이라고 한다. 선입견은 편견을 심어줘 누군가를, 혹은 세계를 정해진 틀로 정형화해 판단하게 한다. 그리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미리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만든다. 연암은 작금의 세태를 서글퍼하며 말한다. ‘슬프다! 까마귀를 검은색에 가둔 것도 충분한데 다시 까마귀를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색을 가두는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들, 내 쪽만이 옳다는 편향된 생각,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편 가르는 태도, 자기 신념에 갇힌 극단적 범죄들, 이러한 살풍경은 갇힌 세계에서 지내다 보니 생각이 고정되고 한쪽에 치우쳐져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자기만의 공간, 닫힌 공동체에서 지내다 보면 생각의 범위가 한정되어 편향된 사고가 만들어지고 네트워크가 나를 중심으로만 좁혀지게 된다. 나와 우리 이외의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만들어진다. 선입견에 얽매여 좋지 않게 보는 태도를 ‘색안경’이라고 이른다. 색안경은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만 보게 만든다. 색안경을 쓰게 되면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세상을 보는 건 불가능하며 세상은 자신이 쓰고 있는 색안경의 색깔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아닌 것엔 장벽을 세우고 편을 갈라 그들을 향한 혐오의 막말과 난폭한 행동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타인은 다 적이지만 색안경을 벗고 보면 너의 눈동자에 내가 있다. 내가 너고 네가 나다. 색안경을 벗고 까마귀를 자세히 보라. 내가 싫어했던 검은 까마귀에게서 푸른색으로 빛나고 붉은색으로 빛나는 날개를 보게 될 것이다. 맑은 날의 바다는 짙은 남색이고 흐린 날의 바다는 연한 녹색이다. 바다는 하나의 색을 보여준 적이 없건만 나의 색안경이 하나의 푸른색으로 가두었을 뿐이다. 까마귀는 다양한 색으로 빛나건만 나의 선입견이 하나의 색으로 고정했을 뿐이다. 나와 우리라는 틀을 넘어 다른 세계와 부단히 접촉하고 기꺼이 월경(越境)할 때 다양한 색이 어우러지고 차이는 존중될 것이다. 색안경을 벗을 때 다양한 색으로 물든 바다,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까마귀 날개를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경계를 넘고 색안경을 벗으려는 나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박수밀(한양대 연구교수·동아시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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