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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나눈 학교 짐 덜은 부모… 새 학기 출발하는 ‘늘봄학교’

저녁 8시까지 선택적 귀가
방과후 프로그램·돌봄교실 통합
공간 문제·운영 인력 놓고 잡음


경기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키우는 A씨는 연초부터 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어린이집보다 아이 귀가가 3~4시간 빨라지기 때문이다. 학원을 보내면 아이가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았고 이런 와중에 학교에 잘 적응할지도 걱정이었다. 휴직도 회사 사정상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딸이 입학하는 학교가 ‘늘봄학교’로 지정되면서 걱정을 덜었다. 학교가 보내온 시간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학교가 무상 제공하는 체육 프로그램에 두 시간 참여한 뒤 학교에서 시간을 좀 보내도록 하거나 학원 한 군데 보내면 퇴근과 얼추 맞을 듯했다.

내년에 취학하는 아이를 세종시에서 키우고 있는 B씨는 늘봄학교 정책을 주목하고 있다. B씨 역시 학교 정규수업 종료와 자신과 남편의 퇴근시간 사이 공백이 걱정이었다. B씨는 지난 29일 “원래 테트리스 블록 쌓듯 (아이의 주간 일정을) 학원으로 채울 수밖에 없어 어느 학원이 좋을지 물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늘봄학교가 모든 초등학교에 도입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올해 늘봄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학부모들 반응은 어떤지 지켜보고 학원 수를 조절할 계획이다. 만약 학원 못지않은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아이에게도 곤욕스러운 ‘학원 뺑뺑이’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오는 4일 시작하는 새 학기에 전국 2741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가 시작된다. 2학기에는 전체 초등학교에 도입된다. 올해는 1학년에 초점을 맞추고 내년에는 1·2학년, 2026년에는 전 학년이 참여하게 된다. 늘봄학교는 기존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교실을 통합한 정책이다. 정규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 다만 저녁 8시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 있는 건 아니다. 자녀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은 학생·학부모 선택으로 정규수업 후 곧바로 귀가해도 된다.

교육부는 초등 저학년의 귀가시간이 실질적으로 2시간 늦춰지는 점을 강조한다. 정규수업 이후 2시간 동안 무료로 양질의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 초등학교의 일과는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오후반으로 학교가 운영되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학생 수가 줄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초등 저학년이 오전만 학교에 있다가 귀가하는 상황이 문제로 부각됐다.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양산뿐 아니라 초등 사교육비 부담 증가로 이어졌고,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도 지목됐다. 다양한 방식으로 초등학생의 귀가시간을 늦추는 정책이 추진됐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지난 정부 초기에는 정규수업 중간에 프로그램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오후 3시 귀가’ 정책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교사 등의 반발에 막혀 무산됐다. 늘봄학교의 무료 2시간 프로그램이 학생·학부모들의 호응을 얻는다면 실질적으로 오후 3시 귀가 정책이 도입되는 의미라고 교육부는 설명한다.


일단 초1 학부모들은 기대감을 표하는 분위기다. 교육 당국에 따르면 1학기에 늘봄학교를 신청한 초1은 모두 11만1354명이다(지난달 26일 오후 7시 기준). 경기도와 제주도를 빼고 늘봄학교를 신청한 인원이 모두 수용돼 대기 인원 ‘0명’인 상태다(표 참조). 올해 초1 예비소집 인원이 36만9441명인 점, 1학기부터 늘봄학교를 시작하는 초등학교가 전체 6175개교 가운데 44.3%란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인원이다.

관건은 프로그램의 질이다. 시·도교육청별로 지역명을 붙여 ‘○○형 늘봄학교’란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1학기부터 관내 304개교 모두 늘봄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다. 부산은 지역사회와의 협력 모델을 내세운다. ‘온 부산이 나선다’는 모토로 부교육감이 단장인 추진단을 중심으로 지자체와 지역에서 시설을, 대학으로부터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 부산학생예술문화회관에서는 발레 뮤지컬 피아노 등, 부산수학문화관에서는 놀이체험수학 사고력수학 인공지능수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천은 아침돌봄이 특색있다. ‘아침이 행복한 학교’란 이름으로 두 종류의 아침돌봄을 선택할 수 있다. ‘따스한 학교’는 독서와 돌봄 위주, ‘신나는 학교’는 체육활동 중심이다. 프로그램은 전용교실, 방과후교실, 돌봄교실 등에서 이뤄진다. 출근시간이 빠른 학부모들이 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늘봄학교는 일부 지역과 학교에서 공간 문제와 운영 인력을 두고 갈등이 있는 상태다. 늘봄학교 전담 인력 투입이 완료되는 내년까지 교사와 교육청 소속 공무원 등의 ‘갈등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의 질뿐만 아니라 민원 해결 창구 역시 중요하다. 서울 서이초 사태 이후 학부모들은 학교에 직접 민원을 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늘봄학교 업무에 대한 교사들의 반감도 큰 상태다. 늘봄학교는 늘봄지원실장, 늘봄실무직원, 늘봄전담사, 늘봄프로그램강사 등으로 구성돼 있어 학부모 입장에선 생소할 수 있다. 한 도교육청 관계자는 “무엇보다 늘봄학교의 법제화야말로 정부가 시급히 할 일이다. 학교와 늘봄학교의 분명한 역할, 책임이 법으로 명시돼야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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