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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키즈=조건만남’ 낙인에 위협받는 아이들

홍대앞서 화려한 옷에 춤추는 10대
日 가출 청소년 ‘도요코 키즈’ 빗대
유튜버 소개 후 남성들 무차별 접근
처벌 가능한데 경고 후 훈방 일쑤

입력 : 2024-02-23 04:05/수정 : 2024-02-23 04:05
일본 애니메이션과 코스프레에 관심이 많은 A양이 2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인근 경의선 책거리에서 춤을 추며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경의선 책거리. 화려한 블라우스와 주름치마 등을 착용한 10대 여성 두 명이 춤을 추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이른바 ‘경의선 키즈’ 들이다. 경의선 키즈 대부분은 옷과 패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청소년이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또래가 이곳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했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 성매매를 목적으로 찾는 남성들이 자주 출몰하면서 청소년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경의선 인근에서 만난 A양(17)은 “최근 두 달 새 이곳에서 저와 친구에게 여러 남자가 찾아와 조건만남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A양에게 초면에 다짜고짜 ‘조건만남’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또 다른 남성은 “밥도 먹고 함께 자자”며 에둘러 성매매를 제안했다. 다른 20대 남성은 “담배를 사주겠다”면서 성적 행동을 요구했다. 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됐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발단은 지난해 10월 한 유명 유튜버가 올린 청소년 인터뷰 영상이었다. 해당 유튜버는 이들을 일본 가출 청소년 문화인 ‘토요코 키즈’에서 따온 경의선 키즈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조건만남을 일삼는 집단으로 소개했다. 이후 경의선 공원 일대에서 코스프레 등 취미 생활을 즐기는 10대 여성 청소년은 성매매 집단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근처 연남파출소 관계자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후 10대 아이들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하려는 이들이 전국에서 오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남성들은 서울 근교인 수원과 인천뿐 아니라 먼 지방에서까지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연남파출소는 홍익지구대와 연계해 최소 오전에 1번, 오후에 1번 경의선 책거리 일대를 순찰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없는 틈을 노리고 오는 청소년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아동청소년법에 따르면 이들처럼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범죄 전문 김숙희 변호사는 “조건만남이나 ‘밥을 먹고 잠을 자자’라는 말로 충분히 대가성을 두고 청소년을 성매매 유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벌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경찰은 청소년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한 이들을 찾아내 처벌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며 소극적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조건만남 제안을 적발하거나, 청소년들에게서 신고가 들어오면 경고 후에 훈방 조치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청소년복지상담센터 관계자는 “문화 자체를 즐기는 청소년과 도움이 필요한 위기청소년 모두 존재”하며 “청소년을 비난하거나 조건만남을 제안하는 등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또다른 피해를 받는 청소년들도 있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위험 상황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 본 상담복지센터에서도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기관들과 1388전화상담를 홍보하기 위한 거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해 경의선 책거리에서 청소년을 위한 상담 천막을 5차례 운영했다. 올해도 다음 달부터 이런 상담 창구를 운영할 예정이다. 다만 센터 상담시간이 평일 오후 6시까지라 야간에 청소년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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