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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은 달라도 믿음 하나로 전신갑주처럼 순종의 옷을 입다

구세군·성공회·루터교가 지켜온 예복에 담긴 의미는

입력 : 2024-02-24 03:00/수정 : 2024-02-26 21:31
주일 예배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를 떠올려보자. 어두운 양복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맨 모습이 쉽게 연상된다. 개신교 전통은 만인사제설을 따르기에 일반 성도와 구별된 성직자 복장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신교 일부 교파는 전통을 따르는 예복을 입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구세군 루터교 성공회다. 잘 몰랐던 이들 교단 목회자의 예복 세계를 들여다보자.

구세군 군복에 담긴 섬김의 의미

구세군 사관들이 정복을 입고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손동작 인사를 하고 있다. 구세군은 정복 어깨에 달린 견장으로 직급을 구분한다. 다양한 견장의 모습(위부터). 구세군 제공, 신석현 포토그래퍼

빨간 자선냄비로 잘 알려진 구세군은 대표적인 목회자 예복을 갖춘 교단이다. 구세군은 목회자를 사관이라 부른다. 창립자 윌리엄 부스 목사가 빠른 의사 결정과 실행을 위해 도입한 군대식 조직 문화가 교단 이름인 ‘구세군’(Salvation Army)뿐 아니라 교단 문화 전체에 녹아 있다. 명칭이나 조직, 예복도 그렇다. 사관이 입는 예복의 정식 명칭은 군복이다. 이는 예배를 집례하거나 공식 모임에서 착용하는 정복과 사무를 볼 때 입는 간이복, 긴급재해가 발생했을 때 긴급구호조끼를 입는다.

구세군 한국군국은 감청색 계열 정복을 입는다. 군인이 공식 행사에 입는 정복과 비슷하다. 견장이 포함된 구세군 재킷과 바지, 구세군 와이셔츠, 넥타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성 사관은 하의를 치마와 바지 중 택할 수 있다. 여성 목회자를 배출하는 구세군은 사관끼리 결혼하고 함께 사역한다. 사관의 재킷 양쪽 어깨에는 S 모양 배지를 단다. 구원(Salvation)과 봉사(Service)를 뜻한다. 자선냄비 모금 활동과 같은 공식 행사에서는 군모를 쓰기도 한다.

간이복과 긴급구호복은 사무나 상황에 맞춘 활동복이다. 견장이 포함된 구세군 와이셔츠에 양복 정장 바지가 기본이다. 군복은 목회자인 사관만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사나 장로에 해당하는 부교나 정교, 세례 교인에 비유할 수 있는 병사도 예배 때 정복을 입는다. 대신 견장에 따라 서로의 직분을 확인할 수 있다.

구세군 한국군국 교육부장인 백진수 사관은 23일 “영문(교회)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부교와 정교는 대부분 군복을 입고 예배를 드리며 군우(성도)는 30~40% 정도가 군복을 입고 영문에 온다”며 “구세군 군복에는 군인이 전쟁터에서 전투하듯 도전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 사랑과 복음을 전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말했다.

전 세계 구세군도 비슷한 정복을 입는다. 다만 나라별 기후나 현지 상황에 따라 색이나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아프리카 국가의 군복은 회색, 연한 황토색, 흰색이다. 1930년대 우리나라 사관은 한복 형태의 군복을 입었다. 구세군은 목회자나 성도가 군복을 입을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많다고 강조한다. 정복을 입은 채 죄를 멀리할 수 있고 군복에 장신구를 할 수 없기에 패션 등 세속적 관심을 지양하고 절제된 삶을 살면서 사역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회, 복잡한 전례복 순서에 담긴 의미

주낙현 대한성공회 영등포성당 관할사제가 최근 서울 영등포성당에서 자주색으로 된 사순절기용 제의를 입고 전례복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중구 서울주교좌성당 예복실에 준비된 장백의와 제의 등 전례복 모습. 지난 2015년 10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대한성공회 선교 125주년 기념 예배 모습. 주교들이 미투라를 쓰고 대례복을 입고 특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 신은정 기자, 신석현 포토그래퍼, 국민일보DB

성공회는 국내 개신교 중 유일하게 예전(禮典) 전통을 따른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전례복이 있다. 전례복은 말 그대로 예배할 때 입는 복장이다. 대한성공회 전례위원회 위원장 주낙현 성공회영등포성당 관할사제는 “예복에는 초월자에 대해 갖추는 존중과 존경이 담겼다”며 “마태복음 22장의 혼인잔치에 나오는 예복처럼 몸과 마음을 준비해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성공회는 목회자를 사제로 칭한다. 이들은 성찬례(예배)에 절차에 따른 전례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한다. 전례복 착용 절차는 다소 복잡하다. 먼저 장백의라고 불리는 하얀색 덧옷을 입고 그 위에 하얀색 긴 허리띠를 두른다. 좁고 긴 스카프 형태로 생긴 영대를 어깨에 두른 다음 그 위에 제의를 입음으로써 예복 준비를 마무리한다. 맨 처음 입는 흰색의 장백의는 정결을, 영대는 멍에(마 11:29~30), 허리띠는 진리(엡 6:14)를 상징한다. 주 사제는 “예복은 성직자와 성도를 구분하는 등 지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를 대표해 성찬례 집전자가 대신 예복을 입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입는 제의와 영대 색은 절기에 따라 달라진다. 대림절과 사순절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자주색 제의를 입는다. 성탄절, 부활절엔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성령강림주일엔 성령의 불꽃과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일반 주일엔 생명을 의미하는 녹색 계열 제의를 착용한다. 장례식을 인도하는 사제는 검은색 혹은 흰색 제의를 택한다.

사제는 일상복으로 캐속(Cassock)을 입는다. 캐속은 검은색이나 재색 계열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외투다. 캐속 안에는 목 부분이 흰색으로 둘러싼 셔츠를 입는다. 옷깃 가운데 틈으로 흰색 부분이 살짝 드러나는데 이를 두고 ‘로만 칼라’(Roman Collar)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른바 ‘성직 칼라(Clergy Collar)’로 부르는 흰색 목 띠 형태의 옷깃은 19세기 초 장로교회인 스코틀랜드 국교회 도널드 맥러드 목사가 처음 고안했다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이다. 거리의 빈민층이 성직자에게 도움을 쉽게 청하라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으로 이후 영국 성공회에서 대중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제가 일상에서 사무를 볼 때는 정장 바지 차림에 성직 칼라를 표현해 간소화하거나 개량한 성직자 셔츠를 입는다. 이 셔츠는 검은 셔츠 목 부분에 흰색 조각을 넣고 뺄 수 있는 탈착 형태, 일체형, 원통 모양 등 다양하게 제작돼 있다. 대한성공회는 지난해 8월 환경 보존을 위해 재활용 원료로 성직자 셔츠를 제작했다.

기독교 예배 전통 고스란히, 루터교 예복

엄현섭 기독교한국루터회 증경총회장이 2010년 서울 송파구 한국루터회관 앞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알브와 영대, 허리띠로 구성된 루터교 예복을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가 루터교 예복(위)을 입고 설교하는 모습과 성직자 셔츠를 착용한 모습. 국민일보DB, 최주훈 목사 제공

루터교 예복엔 여러 상징과 역사적 의미가 담겼다. 루터교가 예복과 예배의식 전통을 고수하는 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입장 때문이다. 루터는 당시 성경이 명시하지 않는 예복 문제는 ‘아디아포라’(진리와 상관없는 문제)로 보고 전통 예복 착용을 권장했다. 전통 예복에 ‘하나님을 암시하는 상징’과 ‘초대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 등이 반영됐다는 이유다.

‘루터교 예배 이해’의 저자 박성완 서울 옥수동루터교회 원로목사는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루터는 종교개혁 시 기본적으로 고쳐야 할 것과 고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했다. 후자 중 하나가 예복”이라며 “1500여년간 이어온 전통을 고치려다 교회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루터교는 지금도 모든 예배 봉사자가 예복을 착용한다. 목회자는 예배 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흰옷인 ‘알브’와 알브 위에 걸치는 좁은 띠인 ‘영대’, 술이 달린 ‘허리띠’를 입는다. 알브와 영대 위에 입는 판초 형식의 예복인 ‘채슈블’은 주로 총회장이 사용한다. 검은색 긴 옷인 ‘장백의’는 70년대까지 착용했으나 예복 간소화에 맞춰 지금은 알브로 대체됐다. 촛불 점화자나 기도자, 성가대원 등 예배 봉사자도 알브를 입는다.

예복은 예배에서의 역할뿐 아니라 성경·신학적 의미도 드러낸다. 영대는 ‘그리스도께 향한 충성의 멍에’를 상징한다.(마 11:28~30) 검은 옷에 흰 옷깃을 댄 장백의와 성직자 셔츠는 예배 인도자 역시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자임을 상징한다. 채슈블은 ‘세례받은 이를 모두 품어 안을 수 있음’을 뜻한다.

박 원로목사는 “기독교 예배는 2000여년이란 긴 역사 속에서 발전했다. 예배의 각종 형식은 이런 역사적 산물”이라며 “대체로 개신교회는 언어라는 수단으로 예배하지만 전통 예배는 비언어적 수단도 여럿 사용한다”고 했다.

신은정 양민경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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