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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우주 핵무기

고세욱 논설위원


1995년 개봉된 영화 ‘007 골든아이’는 007이 구소련의 위성무기 골든아이를 탈취한 러시아 범죄조직과 맞서는 내용이다. 골든아이는 내장된 핵폭탄을 사용해 발생시킨 전자기파(EMP)로 상대방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신무기다. 영화에서 골든아이가 출동한 미그기들의 기기를 망가뜨려 추락시키는 위력을 보여줬다. EMP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서 통신·전력 시스템을 완전히 마비시켜 IT 전쟁의 필살기로 꼽힌다.

EMP의 효능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62년 7월 미국이 태평양 존스턴 섬 상공에서 핵폭발 실험을 했을 때다. 실험 후 1450㎞ 떨어진 하와이 오아후섬 일대의 가로등과 신호등이 꺼지고 통신시설이 먹통이 됐다. EMP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3년이 지나서야 드러났고 미·소 양국은 이후 EMP탄 개발에 나선다.

살상 없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매력적 무기라는 점에서 각종 대중 작품에서도 곧잘 등장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EMP는 기계군단 ‘센티넬’의 인간 탐지와 공격을 막아내는 무기이고 2014년 방영된 국내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선 대통령 암살을 위해 동원된 수단 중 하나로 나온다. 게이머들에겐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 종족의 유닛인 사이언스 베슬의 무기로 잘 알려져 있다.

미 CNN이 최근 러시아가 우주에서 인공위성을 파괴할 수 있는 핵 EMP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무기를 사용하면 휴대전화 통화 및 인터넷 사용도 불가능해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 국방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골든아이와 같은 것이냐”고 묻자 국방부 측은 “즉각적 위협이 아니다”라고 무마했지만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우주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우주 조약’(1967년 발효) 위배라고 주장하지만 신냉전 시대에 얼마나 구속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들어 미사일과 정찰위성 발사에 러시아의 도움을 부쩍 많이 받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가 가는 길을 따라갈까봐 더 걱정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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