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맞고 따돌림도… ‘경로당 폭력’ 사각지대 7080 어르신들

노인끼리 폭행·폭언·따돌림
외로움 달래려 찾지만 다툼 빈발
중간에서 조율할 관리자 없어


경북 안동에 거주하는 A씨(77)는 2022 년 8월 같은 경로당 노인들이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유로 욕을 하며 행패를 부리던 B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A씨는 B씨에게 “점잖게 살라”고 충고했고, B씨는 들고 있던 약 88㎝ 길이의 지팡이로 A씨를 가격했다. A씨는 왼쪽 손등이 골절되는 전치 5주 상해를 입었다. 지난해 3월 법원은 B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지난달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에서도 한 80대가 경로당 제명에 앙심을 품고 다른 노인들을 협박·폭행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한국이 초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 내 다툼과 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경폭’(경로당 폭력)이 ‘학폭’(학교 폭력) 못지않다는 말도 나온다.

폭행뿐 아니라 폭언과 욕설, 따돌림도 많다. 경기도에 사는 C씨(89)는 지난달부터 경로당에 가지 않는다. 경로당 회장이 “걷는 게 불안해 넘어질 것 같으니 나오지 말라”고 면박을 줬기 때문이다. 경로당 회장은 최근 C씨가 인공심장 수술을 하느라 2주간 자리를 비웠을 때도 “전염병에 걸렸던 것 아니냐. 나와도 되느냐”며 눈치를 줬다. C씨는 지난해 여름엔 에어컨 바로 앞에 앉아 있다가 더운 곳으로 쫓겨나는 일도 겪었다.

노인들이 경로당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경로당은 노인들이 생활비를 아끼려고 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경로당에 냉난방비와 부식비 등을 지원한다. 은퇴 후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들이 감정적 교류를 위해 경로당을 찾기도 한다. 노인들은 경로당에서 함께 화투를 치고 밥도 먹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잠시나마 외로움과 고립감을 잊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73만411명으로 전체 인구의 18.96%에 달한다. 경로당도 2017년 6만5604개에서 2022년 6만8180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이 늘어난 것에 비례해 경로당 내 다툼 빈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로당 내의 크고 작은 다툼이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율할 만한 주체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담임 교사나 학교폭력전담기구 등이 마련된 학교와는 확연히 다르다. 익명을 요청한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6만8000여개 경로당 중 약 80%를 대한노인회에서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전문적 분쟁 상담을 해주거나 명확한 규정에 따라 중간에서 조율하는 관리자가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경로당 동료 간의 다툼을 경찰로 가져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경로당 내부에서 분쟁을 최대한 수습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로당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노인들에게 분쟁이나 갈등 지침, 매뉴얼 등을 충분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아울러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전문성을 가진 협회나 기관도 경로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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