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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탁구 막내 에이스 “갚아줘야 할 패배 많다”

[스포츠인] 3번째 패럴림픽 조준 ‘윤지유 선수’

장애인 탁구선수 윤지유가 지난 7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서 동메달, 도쿄패럴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세 번째 패럴림픽인 파리패럴림픽을 앞두고 “금메달이 선수로서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성남=권현구 기자

“아직 막내예요. 10년은 됐을 걸요?”

한국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에 총 81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윤지유(24·성남시청)는 그중 최연소자였다. 16세의 나이로 최고 무대에 섰지만 주눅들지 않았다. 탁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개인전에선 4위에 올랐다.

8년이 지났다. 대학 동기들은 하나둘 학교를 졸업했고 쌍둥이 여동생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휴학생 윤지유의 길은 달랐다. 어느덧 세계랭킹 1위가 됐고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기세를 몰아 생애 세 번째 패럴림픽 출전을 앞뒀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금메달이 선수로서 최종 목표”라고 운을 뗐다.

‘막내 에이스’의 탄생

윤지유는 생후 30개월이 채 안 된 2003년 초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고열을 계기로 척수 부근의 혈관이 손상돼 생긴 일이었다. 걷는 법을 배우고 오래 지나지 않아 휠체어에 앉게 된 맏딸에게 모친은 수영을 가르쳤다.

정작 흥미를 붙인 운동은 탁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TV 중계를 보다가 ‘꽂혔’다. 하지만 휠체어 탄 그를 선뜻 받아주는 탁구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소개를 받아 경기도 용인의 집과 수원장애인복지관을 오가며 탁구를 쳤다.

취미로 잡은 탁구채였지만 재능을 발견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달리 긴 팔에 습득력도 남달랐다. 최용중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었고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종목별 신인 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윤지유는 “(최 전 감독이) 하루는 ‘넌 왜 올림픽 준비를 안 하냐’고 물으시더라”며 “실력이 안 된다고 했더니 ‘한 번 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주변에선 운동을 시작한 뒤 패럴림픽에 나갈 때까지 길면 10년, 짧아도 5년은 걸린다고들 했다. 윤지유의 시간은 달리 흘렀다. 2014년 코파코스타리카 대회를 통해 처음 국제무대를 경험했고 이듬해 같은 대회와 벨기에 오픈에서 우승했다. 2016년엔 리우행 국가대표로 뽑혀 선수촌에 들어갔다. 그렇게 출전한 첫 패럴림픽에선 메달까지 땄다.

이후는 줄곧 오르막이었다. 5년 뒤 도쿄패럴림픽에선 은메달·동메달을 하나씩 추가했다. 같은 해 열린 전국장애인체전에선 3관왕을 차지하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고, 이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도쿄패럴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2위를 한 윤지유가 목에 건 은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장애인체육 관심 10년 전서 답보”

10대에 패럴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윤지유는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서울시청 실업팀 입단을 택했다. 낮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엔 서울 종로의 검정고시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렇게 입학한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에선 휴·복학을 되풀이했다.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초 졸업할 학번이었으나 3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멈췄다. 비장애인 학생이 다수인 데다가 탁구팀도 없는 환경에서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파리패럴림픽을 마친 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자 “하루빨리 복학해서 졸업하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탁구를 시작한 지 10년가량 지났지만 윤지유는 여전히 막내 신세를 못 면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동료를 제외하면 자신이 대표팀에서 유일한 20대로, 가장 터울 적은 선배가 열두 살 위라고 했다. 그는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중도장애인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좀처럼 운동을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환경에서 찾았다. 체육시설이나 교습에 접근하기 용이할뿐더러 학교 운동부 등의 체계도 비교적 잘 마련된 비장애인들과 달리 장애인 선수들은 어려서 체육을 접하기 쉽지 않다는 취지다. 그는 “누가 옆에 붙어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인프라 부족을 극복하려면) 결국 자기 돈을 들여야 하는 구조”라며 “나 역시 장애인체육회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빠르게 패럴림픽에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휠체어탁구, 나아가 장애인체육 전반에 대한 관심이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윤지유는 “아무리 ‘효자종목’ 소릴 듣고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도 비장애인 선수들과 비교하면 관심이 현저히 적더라”며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있다’는 것 정돈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이제 막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가 벌써부터 은퇴 후 체육 행정가로의 변신을 그리는 것도 이런 현실과 맞닿은 듯했다. 그는 “수십년 동안 탁구에만 집중하기보단 더 넓은 시야를 키우면서 후배 양성에도 기여하고 싶다”며 “꼭 탁구가 아니더라도 장애인 체육에 관한 일을 해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中 라이벌 넘어 파리 정조준

윤지유가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탁구 혼합복식 XD7-10 준결승에서 공격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지유는 자신의 탁구 스타일을 공·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파로 평가했다. 장기로는 백핸드를 꼽았고 “20대라 체력적으론 자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론 승부욕을 내세웠다. 그는 “특별히 언제 무엇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며 “눈앞의 수준 높은 선수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가겠다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의식되는 라이벌로는 같은 3등급 선수이자 현 세계랭킹 공동 5위인 중국의 쉐주안을 꼽았다. 상대전적에서 뒤진 데다가 중요한 고비마다 그에게 덜미를 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도쿄패럴림픽 단식이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승리를 거두며 설욕했지만 윤지유는 아직 갚아줘야 할 패배가 많다고 말했다.

윤지유는 오는 8월 말 열릴 파리패럴림픽에서 단식·복식·혼합복식 총 3개 부문에 출전한다. 목표는 금메달 2개를 따내고 이천선수촌에 새겨진 금메달리스트 명단에 자기 이름을 추가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는 도쿄 때를 노렸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경기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 출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며 “이젠 랭킹도 1위가 된 만큼 꼭 금메달을 따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학창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며 실질적 매니저 역할을 했던 어머니, 어릴 땐 아웅다웅했지만 이젠 든든한 원군인 동생은 대회 기간에 맞춰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윤지유는 “아버지는 부드럽고 어머니는 강인한 편”이라며 “(어머니가) 집안일 하랴, 동생 챙기랴 바빴을 텐데 어릴 때부터 늘 국제대회를 따라 다니며 뒷바라지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윤지유의 시선은 파리 너머까지 뻗어 있다. 4년 뒤 미국 LA에서 열릴 다음 패럴림픽에도 현역으로 출전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일단은 부상 없이 몸 관리하는 데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실수를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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