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지 오래다. 한국도 계절에 따라 10~20도를 넘나드는 큰 일교차가 일상이 됐다. 산업화가 초래한 탄소 배출 급증은 이제 사회·경제·안보 등 여러 방면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됐다.
이는 사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들조차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불러왔다. 한국과 한국 기업들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1년 기준 세계 11위인 한국의 탄소 배출량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와 기업의 도전 과제는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다만 이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녹색성장·기후변화대사를 지내고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기후변화 업무를 한 신부남 한국에너지공단 기후대응이사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에너지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만난 그는 “탄소 중립 추구 등을 비용으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2015년 파리협정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교토의정서 체제까지만 해도 선진국만 참여했지만 이 시점을 기점으로 모든 국가가 탄소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에 참여하게 됐다. 다만 그 이후 각국이 탄소 감축을 위해 ‘이행계획서’를 냈지만, 이를 다 지켜도 파리협정에 명시된 1.5~2도 감축 달성은 힘들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나온 것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나 ‘24/7 CFE 협약’(24시간 7일간 무탄소 에너지 사용)이다. 순전히 기업들이 ‘이런 걸 하자’고 해서 시작이 된 거다.”
-민간 영역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게 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 그런데 기업의 움직임을 ‘기후행동 2.0’으로 정의한다면 앞으로는 ‘기후행동 3.0’이 나올 거 같다. 기후행동 3.0은 소비자가 이끌어 갈 거다. 탄소를 많이 쓰는 제품과 서비스를 덜 쓰자, 무탄소 제품과 서비스를 쓰자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거다. 그렇게 되면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각국 규제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굳이 안 해도 소비자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 방식이 지속가능하게 바뀌는 거다. 그러면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는 일회성이 아닌 트렌드로 봐야 한다.”
-ESG 경영과 관련해 한국 기업도 잘하고 있나.
“열심히 하는 곳들이 있다. LG전자나 SK케미칼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모니터링하는 이니셔티브인 ‘SBTi’에 전 세계적으로 7500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도 63곳이 참여 중이다. 평가는 생산공정에서 나오는 탄소와 전력 사용을 통해 나오는 탄소를 뜻하는 스코프 1·2, 그리고 협력사도 탄소를 줄이도록 하는 스코프 3으로 나눠진다. LG전자의 경우 2030년까지 스코프 1·2를 2017년 대비 54% 줄이고 스코프 3도 2020년 대비 2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SK케미칼은 2032년까지 스코프 1·2를 2021년 대비 50%, 스코프 3은 30% 감축하기로 했다. SK케미칼은 국내 화학사 중 최초 사례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기업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중견·중소기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 관련해선 제가 몸담게 된 에너지공단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컨설팅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대기업의 우수 사례를 전파하는 식이다. 금융 당국이 ESG 공시를 2026년 이후 도입한다. 상당히 강한 의무다. 결국 이런 부분을 채우지 못하면 기업들이 수출하거나 해외에 진출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탄소 중립 추구 등을 비용으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소기업은 금융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해외 탄소 감축 사업과 관련해 올해 400억원 정도 예산이 책정돼 있다. 또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가칭 ‘글로벌탄소제로펀드’라는 이름인데, 이를 통해 금융 지원도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금융업계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전략, 기술, 그리고 재원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공공재원으로 했지만 앞으로는 민간재원이 필요하다. 해외 금융의 경우 ESG와 관련된 금융 총액이 2022년 기준 30조 달러(약 4경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도 국민연금 등을 포함해 1000조 정도가 된다.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 금융만 놓고 봐도 198조원 정도가 되는데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역할도 있을 거 같다. 최근 무탄소 에너지(CFE)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원전이 무탄소 에너지로 명시됐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 현실로 돌아온 거다. 기후변화협약의 대전제가 ‘비용 효과적이어야 한다’다. 대원칙에서 보면 모든 무탄소 기술과 에너지가 다 동원돼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야 한다.”
-2050년 탄소 중립이 가능하겠냐는 우려가 있다.
“컵에 물이 반 차 있으면 반이 찼다고도 볼 수 있고 반이 비었다고도 볼 수 있다.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어떻게 잘 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있는 만큼 브랜드 관리가 중요하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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