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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크루아상 사러 가는 길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이 있다. 꽤 풀리지 않는 원고를 마감한 직후라든가, 모처럼 약속 없는 휴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새벽에 비에 씻긴 하늘이 흐려 조금 춥다. 게다가 시장기가 도는 오전이라면, 금방 오븐에서 꺼낸 크루아상과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외출하기 전에 책장에서 에세이를 고른다. 에코백에 쏙 들어갈 정도로 얇은 두께가 좋겠다. 필리프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을 사러 가는 아침’을 집어 든다.

잘 알려진 대로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이라는 뜻이다. 반으로 자르면, 지층의 단면을 잘라낸 듯 층을 이룬 페이스트리. 그 섬세한 결을 눈으로 만진다. 무늬가 없는 단순한 접시에 올린 크루아상은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그 자체로 완전하다. 겉면을 누르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파삭하지만, 속은 새의 뼈처럼 비어서 가볍고 촉촉한 식감. 그 상반된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면 크루아상을 손으로 쪼개보자. 손가락에 버터가 묻는 번거로움 정도야 냅킨으로 쓱 닦아내면 그만이다.

얼마 전 합정동에 문을 연 친구네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손수 실내 장식을 했다. 페인트칠부터 화장실 타일 한 조각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공간은 존재를 드러내는 또 다른 형식이다. 자연스레 카페 주인의 취향과 분위기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완벽한 크루아상을 맛본다는 기대만으로도 이미 하루를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창가에는 눈사람 모양의 일본식 풍경이 흔들리고, 해바라기만 한 스탠드가 놓여 있다. 책장을 칸막이 삼아 구분한 안쪽에 널찍하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데, 깊숙이 파묻혀 느긋하게 책 읽기 좋은 날이다. 금방 넘긴 페이지의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 버렸으니.”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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