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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8년 만에 뒤집힌 가습기 살균제 국가 배상 책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2심 선고가 열린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정일(왼쪽), 송기호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국가가 배상하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은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국가 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 배상 책임을 묻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으나 항소심이 8년 만에 이를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환경부가 유해성 심사를 충분히 하지 않고도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하고 10년 가까이 이를 방치한 것은 위법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개별 배상금은 300만~500만원 수준이지만 이는 기존의 정부 지원금과 구제급여 등을 차감한 금액이다. 소송이 확대되면 국가 배상금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2021년 1월 기준 신고된 사망자가 1740명, 부상자가 5902명에 달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정부가 처음부터 안전성을 점검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인체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정부 인증 KC마크를 내줘 소비자들을 현혹시켰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제정된 후에도 십수 년 간 가습기 살균제의 핵심 물질을 안전성평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민간기업의 연구소장이 정부의 공산품안전심의위원회 기술위원으로 버젓이 활동하다 구속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기업의 허위광고는 걸러지지 않았고,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도 역학조사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모두 직무를 유기했다. 지난 정부에서 감사원이 환경부를 상대로 감사를 벌였지만 가습기 살균제 분담금 부과 과정의 과실을 지적했을 뿐이다.

정부는 2014년 가습기 살균제 백서에서 이 사건의 책임이 우리 사회 전체에 있다는 식으로 정부 책임을 희석시켰다. 정부는 백서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의 기업 유착 비리를 근절하고 인허가 절차와 감독 업무를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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