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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림택권 (18) 건강 나빠진 아내 위해 날씨 좋은 美서부로 이주

점점 예배 출석 성도 수 늘어 안정되자
자체 교회당 마련하려 건축위원회 구성
후임으로 정원교회 박도원 목사 결정

림택권(왼쪽) 목사가 미국 필라델피아연합교회에서 목회할 당시 만난 현봉학(1922~2007) 장로. ‘한국의 쉰들러’라고도 불리는 현 장로는 6·25전쟁 당시 미군의 흥남철수작전에 따라 북한을 탈출하려는 피난민들을 군함에 태워달라며 미 10군단장에게 요청한 인물이다.

이민 목회 환경은 무척 힘들었다. 이미 유학 오기 전 한국에서도 교회를 개척해봤지만 이민 목회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몇 년이 지나자 점점 탈진 상태가 됐다. 목회를 집어치우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이나 운전하겠다고 하나님께 떼를 썼던 때도 이쯤이었다.

“하나님, 저 이제 그만두렵니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해주세요.”

투정 부리듯 종종 하나님께 기도했다. 어떤 응답이 들어올까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기도드리면, 하나님은 늘 “나도 알고 있다”고 대답해주시며 마음을 위로해주셨다.

사실 나도 물론 진짜 속마음은 그만둘 생각까지는 아니었고 그저 하나님께 응석을 부렸던 것 같다. 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이라고는 했지만, 이후에도 하나님에 대한 내 신앙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계속해서 한 길만 바라고 한 곳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렸다. 그러자 점점 예배 출석 성도 수도 늘고, 자체 교회당을 갖자는 열풍도 생겼다. 장로님 세 분을 장립해 당회가 구성됐다. 1978년 2월 정기 제직회에서 교회 성전 건물 마련을 위한 건축위원회가 구성됐다. 그 후 교회에 등록한 78가정 교인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건물을 사들일 종잣돈이 마련됐다. 같은 해 10월 22일 1차 건축헌금을 했다.

벧엘교회는 79년 11월 미국 장로교인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교단에 가입했다. 나는 그 무렵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심사위원 면접을 거쳐 이 교단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듬해 5월 PCA 아센숀노회 가입 예배를 드렸다.

그러던 차에 15년 넘게 미국 중서부에서만 살다 보니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 서부에서도 지내보고 싶었고, 건강이 나빠진 아내를 위해서는 날씨가 좋은 서부가 좋을 것 같았다. 시카고는 마치 미국에서 고향과도 같았던 곳이고 첫 교회를 개척해 함께한 교인들을 떠나기란 퍽 어려웠다. 마침 후임 사역자는 한국 정원교회 주일학교 전도사로 사역을 도왔던 박도원 목사님으로 정해졌다. 박 목사님은 가족들과 미국으로 건너오셨다. 후임자로 박 목사님이 정해진 것 역시 내 앞길을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또다시 경험했던 간증 거리이기도 하다.

나는 후임 박 목사님이 그동안 마련한 교회 건축헌금으로 교회 건물을 구매토록 했다. 그러면서 교회 담임 목사직도 내려놓았다. 이후 벧엘교회는 81년 11월 1일 창립 8주년 예배를 드리며 새 예배당 건물을 헌당했다.

우리 가족이 머물던 스코키 지역 집은 융자로 구입했는데 이를 팔고 융자를 갚고 나니 거의 1만 달러 정도가 남았다. 홀가분했다. 그간 가족과 함께 휴가도 제대로 못 갔으니 많은 곳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마침 여름방학도 시작돼 홀가분한 마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길’(히 11:8)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서부를 향해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는 이것이 믿음이었는지 만용이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 일로 네 번째 담임을 맡게 된 임마누엘교회가 이 땅에 생겼으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 세상 누가 미리 내다볼 수 있을까 싶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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