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여의도포럼

[여의도포럼] 60초가 지배할지 모를 향후 4년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짧은 시간에 강렬한 자극
숏폼에 중독된 사람들 많아져

확증편향, 비합리 강화하고
가짜뉴스·허위정보에 더 취약

팬덤과 결합하면 테러 등
증오범죄로 이어질 수도
총선 앞 숏폼 위험 대비해야

설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만난 집안 어른들은 이제 갓 대학에 진학한 학생에게는 취업에 관해 묻고,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결혼에 관해 묻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는 출산에 관해 묻는다. 다가오는 명절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에 느끼는 행복과 고민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속도에 더 큰 관심을 두는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시청하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구현되면서 이동 중이나 자투리 시간에 배속재생을 통해 콘텐츠를 요약해 시청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제작자가 담아내고자 하는 감정의 흐름을 쫓아가며 결말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바쁜 일상 중에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트렌드를 읽어내기 위한 효율적인 콘텐츠 소비 행태일지도 모른다. 또한 콘텐츠에 몰입을 덜 하면 감정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콘텐츠 소비자들의 이러한 욕구를 반영하듯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의 주요 장면을 편집해 요약한 콘텐츠 소비가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쿠팡플레이에서 히트했던 ‘소년시대’ 10부작을 정주행하려면 540분이 소요되지만, 친절한 자막과 내레이션을 기반으로 편집되어 유튜브에 올려진 요약 영상을 이용하면 60분이면 시청할 수 있다. 요약 영상뿐만 아니라 1분 내외 분량으로 제작된 숏폼 소비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한 리서치 업체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 4명 중 3명은 숏폼을 시청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시청시간은 1시간33분에 이른다. 시청시간은 낮은 연령대에서 더 긴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증가하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들은 고객의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정교한 알고리즘을 설계해 이용자들의 숏폼 중독을 부추기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자극을 주는 숏폼은 마약이나 알코올처럼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분비하는데, 유사한 자극이 지속되면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어 지속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독 현상이 나타나는데, 중독을 유발하는 다른 자극과 달리 숏폼은 접근성이 높고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독의 폐해가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숏폼에 중독되면 뇌는 가상세계의 빠르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져 현실 세계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팝콘 브레인’ 현상을 경험하게 되고, 수동적 집중에 익숙해지면서 능동적 집중이 요구되는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최근 숏폼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인구가 늘면서 정치권도 다가오는 총선을 겨냥해 정당 홍보와 정책 설명을 위해 숏폼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인들의 딱딱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꾸어주고 어려운 정치 현안과 정책들을 쉽게 설명함으로써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 부합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지속해서 노출함으로써 확증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또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악의적으로 편집된 말실수나 표정 등을 담은 숏폼을 통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매체에 비해 숏폼은 인공지능으로 조작된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길이가 짧아 인공지능으로 조작된 영상에 이용자들이 속기 쉬울 뿐만 아니라 확산 속도도 기존 소셜미디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특히 정교하게 조작된 영상은 진위 검증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러한 숏폼의 단점들이 팬덤 정치와 결합하면 청소년의 정치 테러와 같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증오 범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 이뤄진 한 리서치 기업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숏폼 이용자 대부분이 숏폼 제작자와 유통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효성 있는 규제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숏폼 이용자 개개인이 올바른 이용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재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4월 총선에서 숏폼을 통해 전달되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다가오는 소중한 4년을 집어삼키지 않았으면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