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건기식 ‘규제 완화’에 등떠밀린 식약처


최근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의 소규모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권고했다. 개인이 사거나 명절 때 선물로 받은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홍삼 등을 당근마켓 같은 온라인 거래 사이트에서 팔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규제심판부는 현행 법령상 영업자의 대량 거래가 아닌 소규모 개인 재판매까지 금지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그림자 규제라고 유권해석을 하고 식약처에 1년간 시범사업을 통한 합리적 대안 마련을 주문했다.

식약처는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관리를 위해 규제 강화를 주 업무로 하는 부처다. 그런데 ‘규제 완화’라는 명목하에 등 떠밀려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 건기식은 일반 식품과 달리 질병 발생 위험 감소나 생리 활성, 영양소 등 기능성을 가진 원료와 성분으로 만들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실제 식품안전정보원에는 건기식 섭취와 관련돼 매년 1000건 안팎의 건강 이상 사례가 접수된다. 이처럼 국민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건기식의 개인 간 거래로 인해 자칫 문제나 피해가 발생하면 소관 부처로서 책임의 덤터기를 쓸 수 있다. 식약처의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번 건기식 재판매 규제 완화 결정 과정을 보면 규제심판부가 소비자 선택권과 국민 편의, 글로벌 규제 수준을 내세워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 국민 여론은 물론 식약처, 약사회 등 다수가 안전성 우려로 반대했는데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최종 결정 주체인 규제심판부 위원 5명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법과 규제 부문 전문가들로, 보건·의료·안전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규제 완화’라는 방향성을 정해 놓고 여론 조사니 의견 수렴이니 하는 요식 행위를 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규제 완화로 인한 실익이 뭔지, 허점은 없는지, 이득보다 손실이 큰 것은 아닌지 등 종합적으로 충분히 검토한 후 의사결정을 했어야 했다.

이런 점들이 아쉬운 대목이지만 어찌 됐건 이제 공은 식약처로 넘어왔다. 규제심판부의 주문대로 1분기 안에 개인 간 거래 횟수나 금액 제한 등 세부 허용 기준, 일탈 행위 감시·차단 방안을 세우고 1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식약처의 마음이 급할 듯하다. 그렇다고 시간에 쫓겨 설익은 대책을 내놔선 안 될 것이다. 건기식 시장은 ‘지하 경제’가 생각보다 커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개인 간 재판매 허용으로 나타날 문제점을 깊이 살펴보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개인 간 거래로 취득한 건기식 제품을 섭취하고 이상 반응이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개인 간 N차 거래를 거치며 잘못 보관·유통된 제품의 섭취로 부작용을 겪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법적 처벌을 묻거나 보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현행 건강기능식품법은 영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국민이 보게 된다.

아울러 중고거래 사이트나 개인 거래 특성상 정확한 거래 횟수 등 이력 추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동일한 플랫폼 내에서라도 같은 제품에 대해 다른 계정으로 재판매할 경우 거래 횟수 확인이 쉽지 않다. 또 여러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모든 플랫폼에서의 거래 횟수를 관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변질·위해 성분 제품이나 짝퉁의 유통 가능성, 허위·과장 광고 차단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소비자 선택권이나 국민 편의가 건강과 안전보다 우선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식약처는 시범사업 과정에서 규제 완화로 인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정책 추진 철회도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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