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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초부터 잇따른 ‘간병 살인’… 더 세심한 정책적 시선을


대구 달서구 아파트 화단에서 17일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품고 있던 유서에는 ‘아버지와 함께 묻어 달라. 안방에 계신다’고 적혀 있었다. 안방에서 역시 숨진 채 발견된 80대 아버지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던 환자였다. 1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은 이 아파트에서 홀로 아버지를 돌봐왔다고 한다. 경찰은 장기간 간병 끝에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일에는 1급 뇌병변 장애를 가진 30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60대 아버지가 구속 기소됐다. 거동이 불가능한 아들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30년 넘게 식사와 용변을 챙겨온 아버지였다. 그렇게 아끼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오랜 간병의 고통에 짓눌렸던 그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이제 회복해서 죗값을 치르게 됐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간병 살인’의 비극이 연초부터 잇따랐다. 어떤 상황에서든 생명을 앗는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다. 하지만 15년간 아버지에게 효도했을 뿐인 아들, 30년간 아들에게 헌신했을 뿐인 아버지가 이런 결말에 놓이는 상황 역시 결코 정상일 수 없다. ‘간병 파산’ ‘간병 지옥’ 같은 말이 이미 공공연해진 터에 정부가 지난달 꺼낸 간병비 대책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에 비춰 너무 늦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더 세심하고 더 폭넓은 정책적 시선으로 간병 문제를 대해야 한다.

정부 대책은 병원을 통한 간병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간호·간병 통합시스템을 확대하고 요양병원 간병 서비스를 도입해 중증 입원환자의 간병비 부담을 낮추려 한다. 꼭 필요한 조치지만, 환자 분류상 의료 고도·최고도이면서 장기요양 1·2등급에 해당해야 하는 자격 요건을 감안하면 혜택을 받는 이들이 너무 제한적이란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한 두 간병 살인도 재택 간병 과정에서 벌어졌다. 병원의 문턱을 넘어 지역사회 돌봄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환자 가족들이 간병과 일상을 병행할 수 있는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가야 한다.

정부는 각종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그 제도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운 이가 많아 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간병 서비스도 마찬가지일 테고, 비극은 그런 이들에게 더 빨리 찾아갈 것이다. 전문가들은 위기 가정을 찾아내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조치가 간병 시스템이 정착할 때까지 사각지대를 줄일 최선책이라 말한다.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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