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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사실 적시 명예훼손

고승욱 논설위원


명예훼손은 범죄다. 우리나라 형법은 ‘공연히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307조). 어기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을 뜻하는 허위사실 적시만 처벌 받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했어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이 경우 법정형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도둑을 도둑이라고 불렀다가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논란거리다. 미국 대부분 주에서는 명예훼손 자체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민사소송으로 보상받을 수는 있어도 고소·고발은 불가능하다. 형법에 명예훼손죄가 있는 주에서도 사실을 말했다면 문제가 없다. 스스로의 명예를 해치는 말과 행동을 한 사람을 탓해야지, 그것을 잘못이라고 한 사람을 벌주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영미법의 전통이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독일은 독특하다. 민족적·종교적·인종적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차별적 언행 외에는 악의적으로 모욕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죄는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유엔 자유권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비판을 억누르는 데 악용하기 때문이다.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진, 직장, 전화번호를 공개한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배드파더스) 대표에게 지난 4일 명예훼손죄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사회적 여론형성에 기여했으나 신상정보를 공개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사적 제재”라고 설명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도, 이를 공연히 알리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지만 당장 양육비를 못 받아 고통받는 아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로빈 후드와 임꺽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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