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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야구에서 인생을 배웠다

강주화 산업2부장


야구장 가는 길이 가장 행복한 남자. 이렇게 말하면 ‘내 얘기인 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에도 주말마다 주요 야구장 관중석이 가득 찼으니. 그 관중석에는 우리 집 두 남자도 있었다. 한화 팬으로서. 아마 그해에도 한화는 10개 팀 중 꼴찌에 가장 가까웠다. 대전으로 홈경기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한화가 이렇게 못하는데도 한화가 계속 좋아?”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자기는 ○○이가 공부 못하면 ○○이 싫어할 거야?” ○○은 아들 이름이다. 아니 야구팀이랑 아들을 어떻게 비교하나. 태연한 척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다만 다시는 한화의 성적을 언급하지 않았다. 야구가 ‘사랑의 영역’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후 아들이 리틀야구단 선수가 되면서 그 사랑을 직접 체험하게 됐다. 아이가 속한 팀 원정 경기를 한참 쫓아다녔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스스로 말했다. “나 야구 그만할래.” 이유를 묻진 않았다. 다만 학교 선생님에게 “저보다 야구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라고 고민을 털어놨다고 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때로 한계를 직시하고 포기하는 게 용기일 때도 있다. 아마 열세 살 아들은 처음으로 포기를 배웠을 것이다.

그게 지난해 봄. 가끔 아들이 야구를 계속했다면 어떤 삶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그걸 다시 상상해볼 기회가 생겼다. 우연히 야구 감독 김성근(82)이 최근에 낸 책 ‘인생은 순간이다’를 집으면서다. 책은 ‘나는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김성근은 어깨 부상으로 국내 선수 생활을 4년 만에 접었다.

1969년 이후 지금까지 현역 지도자로 살고 있다. 82년에 프로야구팀 코치가 됐지만 25년 만인 2007년 팀 우승을 처음 경험했다. 2009년 그가 이끌던 SK와이번즈가 한국시리즈 7차전에 갔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당시 구단주 최태원 회장은 “김 감독, 잘했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패자가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프로정신이 거세게 발동했다.

이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고 그다음 해 실제로 우승했다. 그는 공 하나에 다음은 없고, 순간순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야구에서 배웠다. 모든 사람이 김성근처럼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겸손한 자세로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뛰어난 감독이 됐다.

김성근은 김응룡 감독이 이끌던 해태타이거즈 2군 감독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둘은 동기인 데다 친하지도 않아서 주변에서 의아해했다. 김성근은 당시 일곱 번이나 우승한 해태가 왜 강한지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2년 동안 김응룡의 용인술과 해태의 팀워크를 배웠다.

김성근은 한국시리즈에서 3차례 우승하고 통산 1384승을 올렸다.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매일 아침 야구장에 가고, 후배들에게 연습 공을 쳐준다. 김성근은 지금도 책을 뒤지면서 야구에 대해 공부한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고, 가릴 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김성근은 야구장에서 ‘성장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삶은 크게 보면 이런 성장의 궤적을 그린다. 발달심리학에서도 인간의 발달을 전 생애에 걸친 점진적 과정으로 정의한다. 미국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이를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고 표현했다. 성장이 평생의 과업이란 의미다. 야구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김성근처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평생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 막 새해 달력 첫 장을 열었다. 나는 올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자문하는 시간이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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