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아주 추운 날에는 연탄을 아무리 때도 바닥이 차. 그냥 이불 두어 개 둘러싸고 꼼짝 않고 견디는 수밖에 없어.”
올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친 1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에서 만난 추모(69)씨는 “작년엔 그래도 견딜 만했는데 올해 추위는 감당을 못하겠다. 이제 12월인데 2월까지 버틸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쪽방촌에 거주한 지 40년이 넘은 추씨는 내복에 긴팔 티를 입고 그 위에 털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그래도 추운지 주황색 패딩을 껴입은 채 발은 두꺼운 등산양말로 감싸고 있었다. 연탄보일러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온기가 닿는 방바닥은 넓지 않았다. 쪽방 특성상 벽이 얇고 내장재도 허술하다보니 현관문 사이로 차디찬 외풍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혹한에는 씻는 것도 고역이다. 대여섯 명이 함께 쓰는 공용화장실은 너무 추워 목욕은 인근 교회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추씨는 “추위만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영등포구·종로구·중구·용산구 등 4개구에 밀집한 쪽방촌 주민은 2360명이다. 그중 이곳 영등포에만 425명이 약 400개의 쪽방에 살고 있다.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상담소에서 지원하는 물품과 인근 종교단체에서 후원자가 주는 물품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14년 전 영등포 쪽방촌에 들어온 이모(56)씨에게 신문지는 방한용품이다. 이씨가 거주하는 쪽방 나무문에는 A4 종이 크기의 창이 있는데, 신문지 여러 장을 청테이프로 고정해 가려놓은 상태였다. 창틈으로 찬바람이 심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큼 좁은 방바닥에 깔린 이불을 들춰보니 신문지가 잔뜩 깔려 있었다. 이씨는 “보일러를 가동해도 냉기가 올라온다. 신문 깔고 위에 이불을 깔면 덜 춥다”고 했다. 그는 “밖에서 자는 노숙자들에게 들은 팁”이라며 “참을 수 없이 추운 날에는 신문지를 접어 옷 안에 끼워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권모(67)씨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권씨가 사는 월세 25만원짜리 쪽방은 두 명이 앉을 만한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TV가 놓인 선반 아래로 두 다리를 넣어야만 간신히 누울 수 있다. 권씨는 머리맡에서 문틈 사이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찬바람을 견디며 잠을 청한다고 했다. 권씨는 “전기장판을 뜨거울 정도로 틀고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그래도 춥지만, 그냥 버티는 거다”고 했다.
서울시는 한파 대비를 위해 지난달 15일부터 ‘노숙인·쪽방주민 겨울철 특별보호대책’을 시행 중이다. 쪽방촌의 경우 15개반 30명이 주야간 순찰반을 편성해 매일 1회 이상 순찰 및 상담 활동을 진행한다.
갑작스러운 한파로 동사 위험 등 긴급 돌봄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675명이 사용할 수 있는 응급 구호시설도 마련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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