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리를 다친 채 나들이를 하다 보니 색다른 경험을 한다.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면 사람들이 동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양보도 잘해준다. “고생하신다”며 인사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좀 나아져 깁스를 풀고 제대로 옷을 입고 휠체어를 타면 태도가 바뀐다. 표정이 굳어 있고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 칠십을 넘어 다치는 일이 잦아지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는 태도가 약간씩 변해 간다. 곧 나을 ‘환자’라기보다 다치는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운 ‘노인’으로 보는 것이다.
환자와 장애인, 노인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환자는 치료받으면 나아질 ‘잠정적 비정상인’이다. 그러니 ‘우리’에 속한다. 장애인이나 노인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영구적 비정상인’이다. 난치 환자들도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니고 별도의 ‘그들’로 치부된다. 취약하고 의존적이어서 부담되는 존재이고 심지어 부끄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만 취약하고 의존적일까? 건강하고 능력이 넘치는 사람들도 얼마 안 있으면 돌봄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노인이 된다. 취약한 노인의 삶을 피해 가는 길은 단명의 비운뿐이다.
신체·정신적인 직접 돌봄을 받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언제나 취약하며, 그래서 늘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다. 가족이 해주는 밥을 먹어야 사는 식구이자, 동료들의 배려를 받아야 활동할 수 있는 사회인이다.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관계’의 존재다.
늘 의존하는 존재라는 말은 항상 돌보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동시에 의미한다. 의존성이 아동, 노인, 장애인, 환자에 국한되지 않듯이 돌봄의 제공도 여성이나 돌봄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취약과 의존이 보편적이듯 배려와 돌봄도 보편적이다. 누구나 의존하고 누구나 돌보는 관계는 다양하고 난삽하게 얽혀 우리의 평생을 관통한다.
우리가 자신을 유능하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의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망각에서 편견과 증오가 자라난다. 우리가 모두 취약하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과 사회의 성숙함이 시작된다.
(재)돌봄과미래 이사장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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