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고대교회 교부이자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했던 성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이교도였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종이 하나를 발견하는데 로마서 13장이 적힌 것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라는 말씀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통해 복음의 정수를 만났습니다. 면벌부를 사거나 성당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며 고행하는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음을 천명하며 ‘이신칭의’(以信稱義·믿음으로써 의롭다 칭한다)를 주장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자 “온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는 말로 유명한 존 웨슬리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보고 자신의 신학을 체계화하기도 합니다. 20세기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칼 바르트 역시 로마서 강해를 통해 인간이 주체이며 역사는 진보한다는 입장에 있었던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고 은혜 중심 신앙의 새 물길을 엽니다.
이토록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변화와 성숙을 가져온 로마서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유럽 전역을 다니며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의 서신들은 대부분 직접 방문하고 목회했던 지역의 교회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달랐습니다. 로마 교회는 주후 40년 이후 로마로 이주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한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로마 교회를 방문하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러므로 서문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내용을 로마서 1장 1절에 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따로 세우심을 받은 사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체성의 밑바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리매김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도로서 활동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그리스도 예수께 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학식과 상식, 일신의 능력, 사회적 영향력 등을 이용해서 일을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라는 것만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자기소개서 첫 줄에 넣습니다. 이러한 바울에게 영향을 받은 고대 교회의 교부와 기독교 개혁자들, 그리고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바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현시대의 가치와 기준에 맞춰 살기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받들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은 다음세대로 전수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복음의 빛으로 밝아지며, 아픔이 치유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걸 기념하는 대림절이 지난 3일 시작했습니다. 대림절 첫째 주간을 맞아 이미 오신, 그리고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전 자기 소개서 첫 줄에 ‘종’이라고 쓴 바울의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종의 정체성과 영성을 탑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민대홍 파주 서로교회 목사
◇서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파주 출판도시에 있습니다. 평신도와 목사가 서로 행복한 교회를 꿈꾸며 작은 일도 함께 토론해 결정하고자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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