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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챗GPT 1년, 결국 돈이 이겼다


AGI를 서둘러 만들려는 쪽과
안전하게 만들려는 쪽이 벌인
오픈AI 내부 주도권 전쟁

과열되는 AI 개발 속도전에
‘스위치’ 끄려 했던 이사회
결국 자본의 힘에 밀려 실패

챗GPT한테 물었더니
“영화 ‘쥬라기 공원’ 줄거리와
비슷한 상황이네요”

오픈AI CEO 샘 올트먼은 2019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부족(tribes)’이란 표현을 썼다. 회사 내에 생각이 다른 두 그룹이 있음을 인정하며 빗댄 말이었다. 이 회사 창립헌장에는 두 가지 목표가 적시돼 있다. ①인간 두뇌를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을 만든다. ②그것을 모든 인류에 이롭고 안전하게 만든다. 올트먼이 말한 부족도 ①과 ②로 나뉘어 있었다. AGI를 ‘만든다’에 무게를 두는 쪽과 ‘안전하게’를 중시하는 쪽. 그의 돌연한 해고부터 화려한 복귀까지, 최근 소동은 AI 개발 주도권을 놓고 서둘러 만들려는 부족과 신중하게 만들려는 부족이 벌인 한판 전쟁이었다.

2015년 출범 당시의 오픈AI는 ②를 지향했다. “구글 같은 거대기업이 AI를 선점하게 놔둘 수 없다”며 차린 회사다. 비영리법인을 택해 자본의 간섭을 배제했고, 이사회도 주주나 직원이 아닌 ‘모든 인류’를 위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규정했다. 그렇게 인공지능 개발에 나선 지 3년 만에 봉착한 문제는 돈이었다. AI를 학습시키는 머신러닝의 컴퓨팅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이 난관을 앞에 놓고 두 부족의 갈등이 시작됐다.

올트먼은 비영리 원칙을 일부 포기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았다. 영리법인 자회사를 세워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10억 달러 투자를 받았다. 구글보다 먼저 AGI를 만들려고 MS를 끌어들인 것에 반발한 ② 부족 강경파 11명이 회사를 나가 경쟁사 앤트로픽을 차렸다. 그래도 일리야 수츠케버 등 신중론 핵심 인사들은 이를 수용했는데, 모회사가 여전히 비영리로 남아있어서였다. 오픈AI는 비영리 모회사의 이사회가 영리 자회사를 100% 통제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됐고, 그들은 이 이사회를 ‘전원 스위치’로 여겼다. AI가 통제를 벗어나려 할 때 황급히 전원을 꺼버릴 수 있는.

작년 가을 앤트로픽이 AI 챗봇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돌자 오픈AI는 GPT-3를 몇 주 만에 개조해 챗GPT를 공개했다. 이미 GPT-4를 만들던 상황에서 올트먼이 내린 이 결정은 다분히 경쟁사와 시장을 의식한 것이었다. 챗GPT가 부른 열풍은 ②에서 출발한 오픈AI의 항로를 급격히 ①로 옮겨놓았다. MS 투자액이 130억 달러로 불어났고, 인공지능 개발 속도는 숨 가빠졌다. 불과 1년 새 GPT-4. 달리 3, GPTs를 내놓더니 GPT-5 개발에 돌입했다. 올트먼은 최근 앱스토어 같은 AI 플랫폼, 스마트폰을 대체할 AI 단말기 등 굵직한 사업화 구상을 잇달아 밝히며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러 다녔다. 회사 가치가 860억 달러로 치솟은 오픈AI는 점점 구글을 닮아가고 있었다.

AI의 위험 요소를 제어해 통제력을 높이는 작업을 이 업계에선 ‘얼라인먼트(정렬)’라 부른다. 올트먼의 개발 속도전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수츠케버가 주도하던 얼라인먼트는 뒷전에 밀렸다. 헌장의 ‘안전하게’란 문구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상황에 이사회의 전격적인 올트먼 해고 결정이 나왔다. “솔직하지 않았다”고 했을 뿐 구체적 이유를 밝히진 않았는데, 세 가지가 거론된다. AI 개발과 상업화 속도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 얼라인먼트는 너무 뒤처졌다는 위기감, 그리고 아직 베일에 가려진 ‘Q스타’ 프로젝트(이 팀에서 초지능 AGI를 구현할 알고리즘을 찾아냈고, 그 파괴력에 깜짝 놀란 연구진이 경고 서한을 보내 이사회가 다급히 움직였다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이 AI 개발의 스위치를 내려야 할 때라고 이사회가 판단한 것만은 분명했다.

해고된 올트먼은 직접 반격하지 않았다. 법적 조치도 비난 성명도 없었다. 대신 돈이 그것을 하게 했다. 이사회가 내린 스위치를 닷새 만에 다시 올린 건 투자자들이었다. 올트먼과 직원들을 다 데려가겠다는 MS의 선언에 이사회는 고립됐고, 결국 올트먼은 복귀했다. 이제 그를 뒷받침할 새 이사진이 채워지고 있다. AI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에서 통제 불능 인공지능의 전원을 끄려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처럼 AI 개발의 스위치를 잠시 내리려던 시도는 끝내 실패했다. 닷새간 전쟁에서 ① 부족의 완승을 이끈 힘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 생물처럼 움직이는 자본의 논리였다.

미국 잡지 뉴요커의 한 기자가 이런 얼개의 오픈AI 사태와 비슷한 줄거리의 영화를 챗GPT에게 물었더니 ‘쥬라기 공원’을 꼽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공룡 테마파크를 만들려는 사업가가 그 위험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개장을 서두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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