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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H지수 ELS ‘3조원대 손실 폭탄’ 누가 떠안을까

시중은행 내년 상반기 8兆 만기 도래
손실 위기 투자자 “불완전판매” 호소
업계 “라임 사태 시기… 가능성 낮아”

연합뉴스

‘불완전판매’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금융권에 드리우고 있다. 라임·옵티머스·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홍역을 치른 지 불과 4년 만이다. 도마 위에 오른 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이다. 5대 시중은행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액만 8조원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40%가량인 3조원 대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ELS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등 조치에 나섰고, 다른 시중은행도 관련 대응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중요사항들을 알리지 않았거나 허위나 과장으로 잘못 판단하게 만들어 상품을 판매한 행위를 말한다. 이미 ELS에 투자한 다수 투자자는 “위험한 투자라는 설명을 충분히 못 들은 채 거액을 투자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9일 자산운용자 최고경영자(CEO) 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사실 관계를 빨리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검사 조치했다”면서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 ‘소비자 피해 예방조치가 됐다’고 운운하는데 자기 면피로 보인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보험부터 DLF까지 반복된 잔혹사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논란은 ‘데자뷰’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해묵은 고질병이라는 이야기다. 당장 굵직한 사건만 떠올려도 키코(KIKO) 파생상품, 저축은행 후순위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 등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평가다.

1990년대에는 보험 불완전판매가 많았다. 보험설계사가 지인을 중심으로 보험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던 탓에 예상했던 보험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2000년대부터는 펀드 불완전판매가 판을 쳤다. 펀드 판매 경쟁 과정에서 상품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리지 않은 사례가 속출했다.

2008년 키코 사태는 불완전판매 논란에 한 획을 그었다. 키코는 환율 하락으로 인한 손실 방지를 목적으로 출시된 외환파생상품인데,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까지 폭등하면서 당시 732개 기업이 약 3조3000억원대 피해를 입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나 ‘동양사태’라 불리는 동양그룹 CP 사태도 불완전판매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2011년 저축은행은 ‘높은 금리’를 미끼로 고객들에게 원리금 보장이 되지 않는 후순위 채권을 떠넘겼다. 2013년 동양그룹은 경영권 유지 등을 위해 금융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무리하게 회사채와 CP를 발행해 약 4만명 투자자에게 1조5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안겼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DLF 사태도 고객들에게 사실상 원금 손실이 없다는 식으로 판매를 권유해 불거졌다. 예금 금리가 연 1%대 수준이었던 시기 ‘3~4%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현혹하고 ‘유럽 선진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 볼 일 없다’고 장담했다. 당시 금융 당국은 개인투자자 약 3600명의 투자금 7300억원이 몰려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최근에도 크고 작은 불완전판매는 계속 적발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금융 당국에 불완전판매로 적발돼 제재받은 금액은 총 6조533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기관별로는 은행이 3조627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증권사에서는 모두 2조4201억원의 불완전판매가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피해’와 ‘손실’은 구분해야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는 엄격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명백한 의무 위반에서 기인한 ‘피해’와 단순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은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수 일반 투자자의 손실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크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피해자로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투자업자가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지켜야 하는 6가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①설명의무 ②적합성 ③적정성 ④불공정영업행위 금지 ⑤부당권유행위 금지 ⑥허위·과장광고 금지다. 이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에 대한 판단은 향후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 수위나 투자자 분쟁 조정·법정 소송 과정 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불완전 판매냐, 아니냐’를 둘러싼 투자자와 금융회사 간 공방은 늘 치열하게 펼쳐진다.

홍콩 H지수 ELS 상품과 관련 원금 손실 위기에 놓인 투자자들은 복잡한 구조의 ELS 상품을 충분한 설명 없이 권유당했다며 불완전판매 피해를 호소하는 중이다. 투자자 일부는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민원을 비롯한 단체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반면 금융권은 이번 사태가 불완전판매로 판단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과거 다수 불완전판매 사태를 거치며 관련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H지수 ELS 상품이 판매된 시점은 라임 사태 여파로 불완전판매에 대한 경각심이 극에 달했을 때”라며 “판매 과정에서 투자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고 녹취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준수했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해당 ELS 투자자 상당수는 재투자를 한 고객들”이라며 “ELS 상품이 무엇인지 인지 못 하고 투자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내년 손실이 확정된 후 불완전판매 여부를 본격적으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단순히 홍콩 H지수 ELS 상품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가 많고, 손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과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은 섣부르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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