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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발견] 굴 없는데 굴친자로 살다 보니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그러니까 나는 소위 굴친자다. 굴에 미친 사람이라고나 할까. 굴 사랑은 십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라던 여행 잡지사에 입사하고 첫 겨울 출장이 충남 보령시 천북이었다.

천북 하면 굴구이집들이 잔뜩 모인 굴 단지로 유명하잖은가. 지금이야 번듯한 식당들이 정렬해 아예 굴 골목상권을 이뤘으나 당시에는 도로 한편에 가건물이나 포장마차 수십 곳이 늘어선 형태였다. 어떤 집이든 내용은 비슷했다.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걸터앉아 연탄불 석쇠 위 각굴을 부지런히 올리고는 한 손에는 목장갑을, 다른 쪽엔 작은 칼을 들고 앉아 굴이 익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굴이 익어가며 뿜어내는 고소하고 순전한 바다 냄새 앞에서 코를 킁킁거리다가 탁탁 소리 내며 튀어오르는 굴 껍데기를 요리조리 피하다 보면 어느새 껍데기 사이가 슬쩍 열리고 김이 솔솔 오른다. 이제 먹어야 한다. 조심조심 껍데기를 열고 통통해진 굴 알을 꺼내 입에 넣으면 포근한 구름이 와락 밀려오는 듯하다. 짭조름한데 달곰하고 배릿하면서도 포근한 제철 굴 맛을 무엇에 비할까.

천북 굴구이뿐 아니라 전국 각지 굴 산지와 외국 해안 도시의 오이스터바를 섭렵하며 나만의 깊고 진한 굴의 기억을 쌓아갔다. 시간이 흘러 제주도에 살면서 몇 가지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굴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육지에서 들어오는 겨울 굴이 있긴 하나 굴 껍데기를 산처럼 쌓아 놓고 정신없이 구워먹는 낭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육지로 나가는 겨울 출장이 생기면 꼭 굴을 먹을 궁리를 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서울 출장에서는 운 좋게 통영 굴을 만났다. 매년 이맘때면 통영 굴들이 서울로 나들이를 나온다. 통영 굴 맛을 뽐내기 위해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 엄청난 양의 굴을 서울 각지의 멋진 식당으로 보낸다. 지속 가능한 미식을 제안하는 푸드 큐레이션 플랫폼인 아워플래닛의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오! 마이 오이스터’ 굴 축제가 이십여 명 셰프의 손을 거쳐 한 달 동안 다채롭게 펼쳐진다. 굴 마니아라면 놓치기 아깝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가 지난 수요일 을지로의 한 식당에서 열렸는데 그곳에서 처음 개체굴을 맛봤다. 다소 생소한 개체굴은 키우는 방식도 남다르다. 보통의 굴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바닷속에서 자라는 반면 개체굴은 수면 바로 아래 동동 떠서 해를 듬뿍 받고 자란다. 굴 껍데기를 가득 채울 만큼 오동통 살 오르는 데다 맛과 향이 단박에 구별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일반 굴보다 맛이 훨씬 풍부하고, 감칠맛이 돈달까. 별다른 요리법보단 맑은 물에 가볍게 씻고 레몬즙 살짝 뿌려 먹으면 된다. 풍요로운 맛 덕분에 마음까지 착해진다.

연신 굴을 까먹으며 통영에서 친환경 방식으로 개체굴 양식을 하는 장용호 어부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부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도 통영 바다에 기대어 굴을 양식하고 아이들을 키운다고 했다. 그에게 겨울이 가기 전 꼭 통영에 가겠다 약속할 즈음엔 우리 테이블 위가 굴 껍데기로 작은 산을 이룬 뒤였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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