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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칼럼] 푸아그라는 문명이고, 보신탕은 야만인가


국빈 만찬에서 영국 왕비의
직접적인 한국인 개 식용 비판

누리꾼들,정상 외교 결례에다
남의 문화 우롱했다며 분노

우리 정부도 국제 기준 반영해
국민 소통 통한 입법 노력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날인 지난 25일(현지시간)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김건희 여사의 영국 활동 내용이라며 서면 브리핑을 했다. 벌써 나흘 전인 지난 21일의 찰스 국왕 내외 주최 오찬과 국빈만찬 참석 내용이었다. 오찬에서는 찰스 국왕과 건강·보건, 기후변화 등에 대해 환담하고 그의 기후변화 관련 책을 선물 받았고, 만찬에선 카밀라 왕비와 예술, 동물 보호, 문학, 기후변화 등에 대해 담소했다고 한다. 찰스 국왕과 윤 대통령이 윤동주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번갈아 낭독하고 비틀스와 비티에스(BTS)와 관련해 이야기꽃을 피운 장면은 당시 국빈 만찬의 하이라이트였기에 뒤늦게 김 여사 활동 내용을 별도로 전달하면 사족에 불과할 뿐 언론 홍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카밀라 왕비가 김 여사에게 건넨 직설적 표현은 국빈방문 성과에 부풀어 있던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내용이었다. 카밀라 왕비는 “가족 중 한 명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인이 고기를 먹자고 해서 갔더니 보신탕집이어서 충격을 받았다”라는 일화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김 여사는 한국에 아직 개 식용 문화가 남아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국내에서의 개 식용 금지 입법 노력을 소개했다. 그러자 카밀라 왕비는 김 여사의 노력을 환영하면서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카밀라 왕비의 개 식용 문화 비판은 같은 만찬 테이블에서 부군들이 상대국 문화를 칭송하는 등 화기애애했던 것과는 엇박자 분위기가 연출된 듯하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개를 먹는 야만인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셈인데 모처럼 국빈방문한 상대국 정상 내외를 만찬에 초대해 놓고 그 나라 문화를 비하하는 건 외교적 결례라는 생각이다. 정상 내조자의 입에서 핀잔이 그리 쉽게 나왔다면 의전 담당자의 자질에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의도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의도된 것이라도 직접화법 대신 에둘러 말하는 게 에티켓인 외교 현장에선 도를 넘은 것이다. 더구나 국가수반 배우자는 ‘문화 외교 사령관’ 아닌가. 이 소식을 접한 한국 누리꾼들은 아직도 대영제국 식민통치의 향수에 젖어 다른 나라 식문화를 우롱하는 거 아니냐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식문화는 나라마다 처한 문화적 다양성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지 기회만 되면 문명과 야만이라는 인류학적 이분법으로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유럽 상류층이 즐겨 먹지만 대표적인 동물 학대로 지적받는 푸아그라는 중세시대 서유럽과 중부 유럽에 떠돌던 유대인들에겐 원래 훌륭한 영양공급원이었다. 율법상 쇠기름, 버터, 라드 등을 요리에 사용하는 게 금지된 유대인들에게 그 당시로선 살찐 거위의 지방이 유용한 식재료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을 포함해 동양인들은 여름철 기생충과 세균을 예방하기 위한 보양식이 마땅치 않아 개 식용을 해오던 전통이 있었다. 주나라에서는 말, 소, 양, 돼지, 닭, 개가 제왕이 먹는 6가지 고기로 통했다. 개가 다른 동물과 함께 가축으로 취급된 것이다. 힌두교도가 소를, 이슬람교도가 돼지를 식용하지 않는 등의 문화적 다양성을 끌어다 식문화 우월 논리를 반박하는 것도 이젠 구태의연하기까지 하다.

만찬 석상에서 영국 왕비가 2000년 자국 정부가 푸아그라 생산을 금지한 것을 비롯해 거위 목에 음식을 억지로 밀어 넣는 가바주 사육방식이 유럽에서 점차 금지되고 있다는 사례 등을 들어 개 식용 문화 근절에 대해 친절하게 한 수 가르쳐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영국을 포함한 유럽인들이 보이콧까지 위협하며 비판했던 한국의 보신탕 문화도 이젠 점차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반려견을 키우는 한국인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성남 모란시장 등지를 비롯해 보신탕 가게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데다 서울시 등이 보신탕 식당의 업종 전환을 유도하거나 국회에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는 등 정책적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김 여사가 개 식용 금지 입법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동물 학대 금지와 관련된 글로벌 스탠더드 추세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야 모두 공감대가 무르 익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국민과 충분한 소통을 한다면 개 식용 금지 목적 달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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