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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시대의 病… ‘연결’을 복원하라

10억명 이상이 ‘매우 외롭다’… WHO “긴급한 위협”

게티이미지뱅크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외로움’을 긴급한(pressing)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발족했다. 사회적 고립의 고리를 끊어 외로움이 초래하는 육체적·정신적 위험을 막겠다는 취지다. 세계 각국에서도 외로움 전담 장관과 대사를 임명하는 등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WHO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통해 외로움을 글로벌 보건 과제 우선순위에 두고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를 이끄는 비베크 머시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은 외로움을 “과소평가되고 있는 위협”이라며 “외로움은 오랫동안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유발하는 그림자로 존재해 왔다”고 지적했다.

외로움 경험자, 조기 사망 위험 높아

외로움의 잠재적 위협은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외롭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 조기 사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200만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고립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일찍 사망할 위험이 32% 높았다. 지난 5월에는 외로움이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PHSCC의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에 세계 곳곳에서 외로움 해소를 위한 대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지난 10월 성 치료사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루스 웨스데이머(95) 박사를 ‘외로움 명예대사’로 임명했다. 웨스데이머 박사는 외로움과 관련한 공익 광고와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방법으로 외로운 사람들을 치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웨스데이머 박스는 뉴욕타임스에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바쁨’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의회는 지난 5월 말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극복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내년 4월 1일 시행 예정인 이 법은 총리 직속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2021년 외로움과 고독사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 직책을 신설했지만 관련 법 없이 대책을 수립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구라 마사노부 외로움과 고독사 담당 장관은 재패니즈타임스에 “내각 사무국에 전담 위원회가 꾸려지고 24시간 전화 상담 서비스가 운영되는 등 노력이 있었지만 관련 법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16세 이상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3%가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대비 3.9%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일본에 앞서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한 영국은 이 문제에 8000만 파운드(1313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스튜어트 앤드루 외로움 담당 장관은 지난 9월 자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가진 외로움을 털어놓을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했다.

미국서 ‘지속 가능한 사교 모임’ 인기

외로움은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갤럽이 142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해 10월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성인 4명 중 1명(10억명 이상)이 ‘매우 외롭다’고 답했다. 연령별로 보면 19~29세 청년층이 가장 높은 수치(27%)를 보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3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셜클럽 ‘그라운드플로어(Groundfloor)’가 인기를 끌고 있다. 회원 간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목표로 스포츠, 명상, 노래, 공예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클럽이다. 현재 베이 에어리어 지역에서만 1000명가량이 이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사용자들은 월 200달러(26만원)를 부담한다. 그라운드플로어는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지점을 확대할 계획이며 이미 2000명가량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 창립자 저메인 이지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그라운드플로어는 성인을 위한 방과후 클럽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백인 위주나 엘리트주의적인 기존 사교 모임과 달리 이곳은 다양성을 우선시한다”며 “오클랜드 회원의 60%, 샌프란시스코 회원의 40%가 유색인종이다. 나 역시 흑인으로서 외로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겨울철 해가 3시간 정도밖에 뜨지 않아 ‘어두운 겨울’로 유명한 스웨덴 북부 룰레오시에선 청년 주민의 45%가 외로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시 당국이 ‘Sag hej!(안녕하세요!)’ 캠페인을 계획했다. 주민들이 서로 인사를 통해 상호 작용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스톡홀름경제대학의 웰빙·복지·행복학 교수인 미카엘 달렌은 “외로움과 고립감은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연중 어느 때나 큰 문제”라며 “외로움과 고립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생겨나는데, 예전처럼 서로 마주칠 일이 많지 않은 데다 사회 활동이 줄어드는 겨울철에 더욱 가속화된다”고 짚었다.

외로움 관련 정책에 지속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노팅엄대 교수이자 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인 폴 크로퍼드는 “외로움이 정치인들이 얘기하는 인기 있는 개념이 됐지만 예산 약속이 뒤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킬대학의 심리학 강사 케이티 라이트-베번스는 “타인과의 연결을 지원하는 의미 있는 인프라 없이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존의 외로움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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