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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내역 감추면 사표감 쌈짓돈 최소 감시장치 필요

[‘음지의 금고’ 특수활동비] <하>

깐깐한 회계처리 후 감사도 받아
전문가 “한국도 투명성 높여야”

국민일보DB

논란을 거듭하는 ‘특수활동비’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일까. 어떤 정부에서나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공개하기 어려운 사건 수사와 관련한 수행 활동은 있게 마련이다. 해외에서도 특활비와 유사한 성격의 예산이 편성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주요국 사례를 보면 특활비를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에서 한국과 차이가 나타난다. 정보기관 특수성에서 기인한 예산 비밀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의회 등 입법부 차원에서 운용 실태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수단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22일 국내 특활비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불투명성을 해소하는 국회의 통제기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수사 기밀성 등 필요가 명확하지 않은 특활비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의 경우 정보기관 예산은 단일 계정으로 총괄해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각 정보기관의 개별 기밀활동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출된 사항은 명확한 회계처리 후 감사원(NAO)의 감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의회의 정보 및 안보위원회(Intelligence and Security Committee)에서 정보 예산에 대한 결산 심사를 한다. 이를 통해 생산된 정보기관의 예산 지출에 대한 정보는 위원회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사후 공개된다.

프랑스도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해외안전총국(DGSE) 등 7개 정보기관에 대한 특별운영비 예산 집행을 의회 정보위 소속 상·하원의원 각 2인으로 구성된 4인의 특별예산관리위원회에서 따로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 특별예산관리위는 2002년 활동을 시작한 후 별도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다가 2016년부터 정보위 연례활동 보고서를 통해 일부 내역을 발표하고 있다. 특정 프로그램의 예산 집행에 대한 부분이 생략되긴 하지만 정보기관에 공개하도록 권고된 내용은 대부분 공표된다.

정부 지출 운용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특활비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이 700개 국가의 총리실에 기밀 예산 존재 여부를 문의한 결과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은 특활비 같은 유형의 예산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캐나다 총리실 답변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정부 지출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밀 예산의 편성을 원천 금지하고 있다.

총리,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무원의 예산 지출 내역은 모두 영수증을 포함해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도 캐나다처럼 비밀 예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만약 공무원이 지출 내역 공개를 거부할 경우 탄핵 사태까지 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르웨이 총리실은 ‘총리가 재정 사용에 대한 영수증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이 가해지나’라는 연맹의 질문에 “영수증 비공개는 정치적 성격의 문제로 강제 사표나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프랑스, 대통령실 비밀예산 없애

프랑스 정부도 앞서 언급된 일부 국가안보 관련 부서 외의 비밀 예산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법원행정처가 2020년 7월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사실조회를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2002년 대통령실 등의 비밀 예산을 없앴다.

한국 국회에서도 특활비에 대한 감사나 국회 예결산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7월 특활비에 대해 외부 기관 감사를 받도록 하자는 취지의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고금 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검찰 등 여타 행정기관에 특활비 지출 증빙을 의무화하고,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수활동비심의의원회’에서 특활비 집행지침을 심의받도록 하자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초 특활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정부기관의 특활비 사용내역 국회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감사원이 정부기관 결산을 검사할 때 그 결과 자료를 예결산 첨부자료로 포함하는 안도 거론된다. 수사 관련 사항의 경우 시간이 흘러 기밀성이 해소되는 점을 고려해 최소 3년 이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국회·감사원이 의무 방기”

전문가들은 국회 통제기능 강화에 더해 근본적으로는 수사 기밀성 등과 직접 관련이 없는 특활비부터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검찰 등은 수사 기밀성을 앞세워 특활비 용처 내역 공개를 거부해 왔지만 실제로는 격려금 지급 등 다른 용도로 쓰인 사례가 드러나 논란을 키운 만큼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국회와 감사원은 여태껏 사실상 본연의 의무를 방기해 왔다”며 “검찰 측은 감사원으로부터 이미 감시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감사원 실무진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지적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스웨덴 정보공개법은 비공개 사유를 극히 제한적으로 열거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이런저런 핑계로 지출 내역을 비공개하기 어렵다”면서 “한국의 정보공개법을 스웨덴식으로 뜯어고쳐 요구가 있을 땐 공개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예 특활비를 폐지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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