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로 통했던 배우 김정은이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을 통해 ‘걸크러시’ 면모를 보여주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붉은 머리를 하고, 몸에 달라붙는 가죽 수트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등 이전에 보여준 적 없던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은은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황금주’를 통해서) 고착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는데 울컥할 정도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드라마에서 선천적으로 괴력을 타고난 모녀 3대 중 강남순(이유미)의 엄마 황금주 역을 맡았다. 황금주는 돈 많고, 힘세고, 정의로운 여자다.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힘으로 맞닥뜨린 문제를 ‘뚝딱’ 해결해낸다.
김정은은 “그동안 사랑스럽고, 백마 탄 왕자에게 도움을 받는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사실 반갑지만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는 걸까 고민이 있었다”며 “그래서 임팩트 있다, 섹시하다 이런 반응은 제게 감사한 찬사다. 나이에 맞게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영화 ‘가문의 영광’(200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활발히 활동했던 김정은은 2010년 들어 활동이 뜸해졌다. 2020년 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를 마지막으로 3년 간 활동이 없었다.
그는 “결혼하고 홍콩도 오가면서 대본을 접할 기회가 없어졌다.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았지만, 배우인지라 좋은 드라마를 보면 피가 끓는 느낌도 들었다”며 “(드라마에서) 김해숙 선생님이 ‘가슴이 처지지 심장이 처지냐?’고 하는 대사가 있다. 저도 심장이 처지진 않았던 것”이라고 연기를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황금주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김정은은 “저는 황금주가 좋다. 속물근성도 있고, 가장으로서 독재적인 면도 있고. 이런 모습이 현시대를 반영하는 재밌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겉으로는 되게 센데 속으로는 약하고, 진지함을 20초 이상 가져가지 못하는 여자다. 그런 게 제 취향에 맞았다. 그래서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모든 면에서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주는 황금주를 연기하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인생의 태도를 배우기도 했다. 김정은은 “황금주는 남순이를 잃어버렸을 때 낙심하기보다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내가 다른 사람을 귀하게 대해야 남순이도 다른 사람들이 잘 대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계관은 살아가면서 계속 간직해야겠다 싶었다. 도움을 받은 게 많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힘이 센 연기를 하다 보니 진짜 내가 힘이 센 것처럼 느껴지면서 가끔 어려운 상황을 보거나 사고가 생기면 ‘내가 진짜 힘이 세면 몇 명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울컥한 적이 많아요. 여러 면에서 약자인 여성들, 특히 엄마들이 제게 공감하면서 잠시나마 위로도 받았길 바라요.”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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