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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눈물의 세례, 복음의 진수

장창일 종교부 차장


“교회는 사람의 양심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절대권을 대표하느니만큼 도리어 끊임없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종교는 사사(私事)가 아니다. 믿는 자의 취미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이다. 그런데 그 기독교가 내붙이는 교리와 실지가 다르고 겉으로 뵈는 것과 속이 같지 않은 듯하고 살았나 죽었나 의심이 나게 하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사회가 정신적 혼란에 빠져 구원을 위해 두 손을 내미는데 교회는 왜 아무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 시대에 구원이 기독교적인 데서 와야 한다는 것은 전 인류의 방향이 지시하는 바다.”

누가, 언제 쓴 글일까. 오래전 쓴 것 같으면서도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고언과도 같아 아리송하다. 이 글은 함석헌이 1956년 1월 ‘사상계’ 30호에 기고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일부다.

67년 전 교회를 향한 사상가의 쓴소리가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긴 세월 교회는 무엇을 한 것일까. ‘이 시대에 구원이 기독교적인 데서 와야 한다는 것은 전 인류의 방향이 지시하는바’라고 한 함석헌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성직자가 연루된 추문을 볼 때나 교회 내부 다툼이 결국 사회 법정까지 가 판결을 받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때도 있다.

물론 어두운 면이 전체 교회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교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고 있다. 국민일보 연중기획 ‘다시 희망의 교회로’에 소개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농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교회부터 주민을 위해 식당과 소액대출을 하는 은행을 설립한 교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주일 채식 미식회’를 여는 신앙 공동체와 시골 마을 어르신과 함께 살며 한글교실을 연 교회 등 거창하지 않아도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이들의 사연이 각박한 세상에 온기를 더했다.

예수가 전한 복음에는 힘이 있다. 그 복음이 가장 먼저 뿌려졌던 성지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또다시 전쟁이 터졌고 사상자가 늘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자지구 북부 성포르피리오스교회에서 9명의 어린이가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 아흐레 전 교회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고 이곳으로 피한 교인 19명이 사망했다. 이 중 3명이 어린이였다.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인 교인들은 “앞으로 또 폭격이 이어질 테니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자. 그리스도인으로 죽게 해야 한다”며 눈물의 세례식을 진행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세례를 택한 가자지구 신앙 공동체의 결정을 보며 복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예수를 통한 인간 구원의 비밀이 담긴 복음 안에서 살고 죽기로 한 가자지구 그리스도인들의 결정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사라진 일이 없다. 단지 복음을 받은 이들이 퇴색했을 뿐이다.

다시 함석헌의 글이다. “기독교가 본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정복적인 생명력을 가졌었다. 기독교가 들어와서 천지간에는 오직 한 분 신령한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인간은 그 자녀라 하며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종래 듣던 것보다 모두 합리적이요 모두 깊고 큰 세계관이며 공정하고 높은 윤리요, 거기는 인류 역사를 개조한다는 약속이 들어 있는 복음이었다. 그리하여 민중의 마음은 섶에 불이 댕기듯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이미 지닌 건 복음의 능력이고 잃은 건 뜨겁고 순결했던 첫 마음 아닐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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