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여의도포럼

[여의도포럼] 가볍게 봐선 안 될 ‘한국경제 정점론’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새로운 성장동력 보이지 않고 청년들 기회의 창 점점 좁아져
성장잠재력 계속 소진되는데 선거가 정책기조마저 삼켜
한국경제 역동성 존폐 기로에 정부 최우선 책무는 구조개혁

연말이 가까워지며 내년도 경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결론은 대체로 비관적이다. 지난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지난 5월보다 0.1%포인트씩 낮춰 1.4%와 2.3%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은 지난해 5월 2.3%에서 1.8%, 1.5%로 계속 하향 조정되다가 1.4%까지 내려온 것이다. 팬데믹 이후 ‘지연 수요’로 호황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국내외 일각에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피크(peak) 코리아론’이 퍼지고 있다. 내년에는 2.3% 성장해 정상 궤도에 진입할 것처럼 말하지만 올해 성장률이 워낙 낮은 데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한 외국계 은행은 내년에도 1%대 성장을 못 벗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앙대 류덕현 교수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도 ‘2024 한국경제 대전망’에서 내년에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 경기가 반등하고 중국 경제가 회복돼 수출이 좀 나아지더라도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과 고금리, 고물가 때문에 소비가 위축돼 경기 회복은 젖은 장작 타듯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중동 등에서의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며 국제 환경도 개방적인 한국 경제에 불리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2.5%에도 못 미치는 장기 저성장이 지속되는 데다 고금리의 압박에도 가계부채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등 여러 경제지표가 비정상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총선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을 이유로 과감한 확장재정을 요구하지만 총선용 예산 늘리기 공세라는 의심도 사고 있다. 정부는 건전재정에 진심인 것처럼 말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이를 관철할지 두고 볼 일이다. 삭감된 연구·개발(R&D) 예산 살리기와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저리 융자금, 주식 공매도 금지와 메가시티 전략 등 총선용 메뉴가 쏟아지며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가계부채 위기가 터지면 외환위기보다 몇 십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도 부동산 규제를 풀고, 소상공인이 ‘은행 종노릇’ 한다며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한다. 야당은 예대마진으로 ‘돈 잔치 벌인다’며 은행의 초과수익을 환수하는 횡재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정체기라거나 이미 정점을 쳤다는 시각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보이지 않고 청년들이 열정을 불태울 기회의 창은 좁아지는 상황이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대응은 늘 단기 처방 위주였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문패만 바뀐 성장과 고용 전략이 등장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윤석열정부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겠다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세계는 지금 큰 정부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산층 살리기를 목표로 강력한 산업정책과 노골적인 보조금 정책을, 일본은 임금 인상과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나 한국 경제 정점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시장불안 요인만 잘 관리하고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지지 않도록 하면 내년에는 큰 폭의 성장률 반등이 가능하다고 믿을 것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40%나 되고 ‘그냥 쉬는’ 청년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노동시장의 비정상,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우울과 자살이 증가하는 사회 병리 현상에 대해 정책 당국은 근원적 치료를 주저한다. 이로 인한 성장잠재력 소진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경제는 꾸역꾸역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일본이 갔던 장기 저성장의 터널일 가능성이 높다.

더 큰 걱정은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민간주도 성장 전략이 총선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흔들린다는 점이다. 선거판의 경제 흔들기가 끝나고 새 국회가 들어서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3년 후쯤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할 것이다. 경제가 오르막길에 있다면 시장에 맡겨도 그만이지만 지금은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이 정부의 최우선 책무여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감을 갖지 않고 쉬운 일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 경제 특유의 역동성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