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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거부권

고승욱 논설위원


거부권(veto)의 기원은 BC 5세기 로마로 올라간다.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을 택한 로마는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의 결정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호민관이 거부권을 행사토록 했다. 또 2명의 집정관이 한달씩 입법권과 행정권을 나눠갖고, 서로에게 거부권을 갖도록 했다.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 협의·동의 절차 없는 일방적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취지가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에 반영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으로 자리잡는다. 미국 헌법 1조 7항에는 ‘상·하원을 통과한 모든 법률안은 대통령에게 제출돼야 하며, 대통령은 승인하거나 거부서를 첨부해 돌려보낼 수 있다’고 적혀있다. 식민지에서 본국의 뜻에 반하는 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왕과 총독이 가졌던 거부권 전통을 삼권분립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주별 하원의원 수 결정 방법을 정하는 할당법과 경기병 부대 해체와 관련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신념에 반하거나 포퓰리즘적 법안에 주저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4선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차 대전 참전 군인과 가족을 지원하는 법안이 재정에 지나친 부담을 준다며 의회로 돌려보낸 것을 포함해 635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6번, 도널드 트럼프 10번,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12번씩이었다. 빌 클린턴과 조지 H W 부시는 각각 37번, 44번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통과시킨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국회로 돌려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은 68번 있었다.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해 힘의 균형을 이루라는 취지로 헌법에 명시된 거부권 행사를 잘못이라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거부를 전제로 법을 만드는 것도,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반복해 가로막는 것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 악순환은 언제쯤 끝나려나.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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