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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갈등 공화국 벗어나려면 침묵하는 다수가 나서야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정당·이념 갈등 등 한국 갈등
수준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아

더욱 걱정되는 건 소수 강경
세력이 갈등을 주도하고, 갈등
해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갈등
프레임을 바꾸고 무당파층과
중도층이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분석’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우리 사회 갈등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최대 246조원(국내총생산의 27%)을 사회적 갈등 관리 비용으로 쓰고 있다.

한국의 갈등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지 정당, 이념, 빈부, 성별, 나이 등 12개 갈등 항목 가운데 7개 항목에서 갈등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응답자 91%가 지지 정당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해 세계 평균 69%보다 훨씬 높았다. 이념 갈등 역시 세계 평균이 65%인 데 비해 한국은 87%였다. 국내 연구소의 분석 결과도 다르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갈등지수는 55.1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가운데 멕시코(69점)와 이스라엘(56.5점)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갈등 수준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갈등 추이, 갈등 프레임, 합의 시스템에 대한 부분이다. 우선 갈등 추이를 보면 해가 갈수록 집단 간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2023년 5월 2주)에 따르면 94%의 응답자가 여당과 야당 사이의 갈등이 매우 크거나 큰 편이라고 답했다. 진보와 보수 갈등에 대해서는 92%가 크다고 답했다.

두 번째 걱정은 다수의 국민을 배제한 채 소수 강경 세력들이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행정연구원 ‘2022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67.7%에 달한다. 이념 성향을 보면 중도가 48.7%로 절반에 가깝고 보수는 28.1%, 진보는 20.7%다.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4.7%이고 매우 진보적은 2.2%에 불과했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여야 갈등과 진보 보수 갈등이 심각하다고 말하지만 국민 다수가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거나 이념적으로 중도적 입장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표출되는 갈등이 국민의 가치나 이해관계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갈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걱정은 갈등 해소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양 집단이 갈등을 벌이는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최근 여야와 진보 보수 갈등의 최대 화두는 개혁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개혁 정책은 여지없이 편 가르기 싸움으로 이어졌다.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과 현 정부의 이념 투쟁 모두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싸움으로 이어졌다. 개혁을 거부할 수는 없으나 막상 무엇이 개혁인가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한다.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도 개혁의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상대 세력을 압박하고 자기들이 더 많은 권력과 이득을 차지하는 것을 개혁이라 한다. 적폐 청산 혹은 개혁을 통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하는 청사진이 없다. 자신들의 권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적폐이고 이들을 청산하는 것이 개혁이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갈등의 프레임을 바꾸고 침묵하는 다수가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우선 갈등의 프레임을 인물과 세력 갈등에서 가치와 정책 갈등으로 바꿔야 한다. 인물과 세력 갈등은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가진 권력을 뺏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반면 가치와 정책은 타협이 가능하다. 소통과 협상을 통해 제3의 안을 찾을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침묵하는 다수가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을 볼 때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대화와 타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정부, 국회, 정당, 언론, 시민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소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이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무당파층과 중도 집단이 적극 나서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을 만들고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친윤과 비윤 그리고 친명과 비명 어느 쪽에도 서고 싶지 않은 국회의원들 또한 침묵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정치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길 간절히 소망한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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