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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아스피린처럼 흔해진 마약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지대’였다. 미국과 남미가 코카인 헤로인 대마초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도, 유럽 젊은이들이 해시시와 엑스터시에 열광할 때도, 한국은 늘 예외였다. 가뭄에 콩나듯 가끔 불거지는 마약 사건은 그래봐야 1년 평균 수십건 안팎이었고, 마약을 대규모로 유통하는 밀수입 루트가 없으니 대부분은 화학약품으로 만들어낸 소량의 ‘자가’ 제조 필로폰 유통에 그쳤다. 그나마 필로폰 기술자들이 ‘실험실’을 차려도 특유의 냄새로 쉽게 발각되기 일쑤였다.

그랬던 한국이 7년 전 유명 가수와 배우 등이 얽힌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미국처럼 쉽게 마약을 구하고 팔고 복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돼가는 듯하다. 최근 터진 유명 배우 이선균의 마약 복용 사건뿐만이 아니다. 동네 병원에선 돈만 많이 내면 케타민과 프로포폴 주사를 놔주는 양심 없는 의사들이 넘쳐나고, 젊은 층이 찾는 클럽에선 정체불명의 마약이 널리 유통된다고 한다.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전 사회적으로 느슨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추상같던 검찰의 마약 수사 의지가 꺾인 것일 게다. 저 ‘유명한’ 문재인정부 시절의 검찰개혁으로 마약 관련 범죄 수사권의 경찰 이관이 포함된 뒤부터 한국은 유명 연예인과 재벌2세는 물론 업무 스트레스에 휩싸인 직장인, 유흥을 즐기는 젊은 층에게 ‘마약 권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1950년대까지 미국사회는 얼마 전까지의 한국처럼 나름대로는 마약 청정사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부터 번성했던 마피아 조직 범죄를 뿌리뽑으려던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이 기세등등했고, 주 단위 수사기관들도 범죄조직이 유통하려던 마약류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0년대 히피 문화가 번성하면서 미국은 갑작스레 마약이 횡행하는 사회로 돌변했다. 대마초가 지식인 부류에 급격하게 번지자 수사기관들은 이들의 단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경계심이 느슨해진 검찰과 수사기관은 70, 80년대 남미산 코카인 대량 밀수입이 벌어지자 속수무책이었다.

대규모 마약 유통조직은 잡아들였을지언정 마약 복용자들에게 미국사회는 너무도 관대했다. 중독된 복용자들은 아는 사람과 연인과 친구들에게 또 마약을 권했고, 단속된다고 해도 벌금 얼마 내는 수준인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21세기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는 마약에 취하거나 마약을 구하기 위해 거래자를 찾아 헤매는 ‘좀비 인간’의 전용 거리가 있는 실정이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 같은 거물조차 정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케타민 주사를 아스피린 복용하듯 맞지만 처벌은 전혀 받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태생지이자 중심이었던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은 얼마 전 이 도시 탄생 200여년 만에 슬럼가로 변했다는 소식이 미국 언론을 타고 전 세계에 타전됐다. 기업들이 도심의 빌딩을 비운 채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시민들은 마약에 취한 노숙인과 범죄자를 피하기 위해 아예 찾지 않는 지역이 됐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약 복용자나 소규모 마약 상인에게 가장 관대한 도시로 잘 알려졌던 곳이다.

순간적인 쾌락과 삶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겠다는 생각은 모든 인간에게 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하지만 그 유혹이 불법으로 이뤄지거나 조직 범죄와 연결될 경우 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번 궤도를 이탈한 열차는 다시는 제 궤도로 돌아오지 못한다.” 조금은 과해보였지만, 서슬퍼렜던 검찰의 마약 단속 시대가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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