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金市價(환금시가). 언뜻 고사성어처럼 보이지만 민법 제378조에 있는 용어다. 이 조문에서는 “履行地(이행지)의 換金市價(환금시가)에 依(의)하여 우리나라 通貨(통화)로 辨濟(변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이른바 ‘기본법’에는 한자로 표기된 조문들과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문장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換金市價’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을뿐더러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다. 이에 법제처는 ‘기본법 알기 쉽게 새로 쓰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를 ‘환율’로 바꾸는 정비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외에도 상법 제520조에는 “會社(회사)의 業務(업무)가 顯著(현저)한 停頓狀態(정돈상태)를 繼續(계속)하여”라는 문구가 있다. ‘정돈상태’라 하면 흔히 가지런히 ‘정돈(整頓)’된 상태를 떠올리기 쉬우나 여기서 ‘정돈(停頓)’은 ‘침체하여 나아가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그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회사의 현저한 업무마비 상태가 계속되어’로 정비안을 마련했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법령 속 어려운 용어와 문장을 알기 쉽게 정비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첫해 5개년 계획을 통해 법률 890건과 그 하위법령인 대통령령 및 총리령·부령을 정비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2018년부터 2023년까지는 현재 시행 중인 법률과 그 하위법령, 법령 보충적 행정규칙, 제정·개정을 준비 중인 법령을 대상으로 정비 대상 용어를 발굴하고 정비안을 마련해 소관 부처 등에 제공하고 개정 절차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일본식 용어 ‘개호’를 ‘간병’으로, 의료용어 ‘상박골’을 ‘위팔뼈’로, 회계용어 ‘대차대조표’를 ‘재무상태표’로 개정하는 등 많은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정비했다.
한 단계 나아가 2021년부터는 ‘한눈에 이해되는 법령정보 제공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자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법조문에 그림, 사진 등 시각콘텐츠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법령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현재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건축법, 도로교통법 등에 실려 있는 콘텐츠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부터는 법령 속 용어뿐 아니라 ‘문장’을 집중적으로 정비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에는 보건·의료 분야와 주택·건축·도로·교통 분야 법령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향후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정비해나갈 예정이다.
곧 577돌 한글날이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뜻을 되새겨 본다. 법령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법제처는 세종대왕의 뜻을 살려 일반 국민이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완규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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