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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긴축 예산 취지 이해하나 국가경쟁력 도움될지 고민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를 통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9000억원 규모로 확정했다. 증가율은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사실상 역대 최저 수준이다. 세수 부족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려는 정부의 고육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5년 만에 1000조원을 넘어선 반면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39조원이나 줄었다. 이 와중에 생계급여액을 역대 최대 수준(13.16%)으로 올리고, 결혼 안 했어도 아이를 낳았다면 ‘공공분양주택 특별공급’ 혜택을 주는 등 취약계층 지원과 저출산 대응에 예산을 늘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했다”고 예산안을 평가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긴축 예산을 밀어붙인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하지만 재정 만능주의를 타파하자며 긴축 만능주의로 기우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내년 예산 증가율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8∼2022년 증가율(8.7%)은 물론 이명박·박근혜정부 평균치(5% 중반)에도 크게 못 미친다. 올해 예산(5.1% 증가)도 긴축으로 평가받는데 내년에 2%대로 낮춘 것은 현 상황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긴축 속도가 너무 과하다. 더욱이 중국 경제 둔화 지속으로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2%로 내리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여서 경기 대응은 통화보다는 재정으로 해야 할 시점이다. 방만 운영은 지양해야 하지만 재정 건전화를 긴축에만 의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세수 기반 확충 등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산의 선택과 집중이 잘 됐는지도 의문이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25조9000억원)은 올해보다 16.7%나 줄였다. 정부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에 지원을 늘렸다고 하지만 출연연구기관(-10.8%)과 기초연구(-6.2%)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당장의 성과를 볼 제품 개발에만 힘쓰고 기초과학과 원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향후 국가 경쟁력에도 손해다. 반면 재정으로 노인 일자리를 늘렸다며 전 정부를 비판하더니 내년 노인 일자리 예산 증가율은 25%에 달한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약 5% 늘렸다. 긴축 속에서도 표가 되는 예산은 늘린 것이다. 국가 미래를 외면하고 당장(총선)의 잇속을 챙기는 것은 건전 재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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