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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오펜하이머의 부서진 꿈

장창일 종교부 차장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론 물리학자다. 미국이 원자폭탄 연구에 나섰던 건 나치 때문이었다. 1939년 독일의 핵화학자 오토 한이 우라늄 핵분열 연구에 성공한 게 촉매제가 됐다. 이 연구를 통해 원자가 분리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걸 발견했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이 이론이 가공할 위력의 폭탄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리학자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나치가 폭탄을 만들기 전 미국이 먼저 만들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썼다. 서신에 대표 서명을 한 물리학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원자폭탄 개발을 승인했다. 나치보다 빠르게 만드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그사이 여러 변수가 생겼다. 1945년 4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고 같은 해 5월 나치는 패망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인류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내용 중 일부다. 영화에서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는 장면이 백미다. 큰 폭발음 대신 정적이 흘렀다. 관객들은 고요해진 영화관에서 높이 15㎞, 폭 1.5㎞에 이르는 버섯 모양의 거대한 불꽃에 집중했다.

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항복하지 않고 버티던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됐다. 일왕은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 만들어지면 전쟁이 종식될 거라 생각했지만 불과 5년 만에 실종자를 포함해 300만명이 사망한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의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셈이었다. 핵무기도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더욱 큰 위력의 수소폭탄도 개발됐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1월 기준 핵보유국이 가진 운용 가능한 핵탄두 숫자가 전년 대비 86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핵보유국은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북한 등 9개국이다. 이들 나라에 1만2512개의 핵탄두가 있는데 이 중 9576개가 군사적 용도로 비축돼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전쟁사의 총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 갈등이나 1953년 이후 이어지는 한반도에서의 대치도 마찬가지다.

역사 속에는 생명과 죽음이 한데 뒤섞인 사례가 적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벨기에 서부 이프르 전선에서 영국과 프랑스군 그리고 독일군이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기관총탄이 날아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독일군 진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시작으로 대치하던 군인들이 하나둘 참호에서 나왔고 결국 하루 휴전했다. 이들은 음식을 나눴고 축구 경기를 했으며, 둘러앉아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하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잠시뿐이었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눴던 이프르 전선에 불과 4개월 뒤 독일군이 167t의 염소가스를 살포했다. 최초의 화학전이 벌어진 장소에 울려 퍼졌던 캐럴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잠시 깃들었던 희극은 비극으로 향하는 통로였을 뿐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고 선포했다.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도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선지자의 외침은 진정 공허한 것이었을까. 신냉전의 한복판에서 품는 평화의 꿈이 조각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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