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건물 공사에 쓰이는 펌프 용품 계약을 LH 전관이 근무 중인 특정 업체에 몰아주려 한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다. 해당 업체와의 수의계약이 불가능했던 2020년에는 10년간 연평균 20억원 이상 체결하던 수의계약 사례가 없다시피 했다. 매년 대형 공사를 진행해 온 LH가 관련 물품의 수의계약 물량을 급격히 줄인 해는 2020년이 유일무이하다(국민일보 2023년 8월 15일자 13면 보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5일 이와 관련, “LH는 퇴직자가 근무하는 업체와의 용역 계약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따르면 LH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연평균 23억4362억원어치의 ‘부스터 펌프’ 제품을 수의계약했다. 부스터 펌프는 수압을 올려 각 층으로 물을 공급하는 건물 급수 시스템의 핵심 장치로 건물 공사의 필수 요소다. 아파트 시공이 잦은 LH의 부스터 펌프 연평균 수의계약액은 한국수자원공사나 한국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타 기관들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부스터 펌프 업계에서는 LH가 공공기관 중 가장 ‘큰 손’에 해당한다.
최근 10년간 계약물량의 98%는 특정 회사인 A사가 10년간 독점했다. 하지만 2020년만큼은 A사를 비롯해 LH 수의계약 실적이 유독 저조했다. LH가 2020년에 체결한 수의계약액은 2284만원 규모에 그쳤다. 그나마도 유착 의혹이 제기된 A사가 아닌 다른 업체와의 계약이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로 2020년에는 A사의 부스터 펌프 제품과 수의계약이 불가능했다는 점이 꼽힌다. LH가 조달청을 통해 A사 제품을 수의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제품이 ‘우수제품’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달청 우수제품에 선정되면 금액 무제한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다만 우수제품 지정 기한은 최대 6년이다. 이후에는 특허를 새로 받는 등 신제품으로 심의를 받아야만 지정이 가능하다. 2020년의 경우 A사 제품은 이 문턱을 넘지 못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대주택공급 등 건설 발주가 많았던 당시 시점을 생각하면 LH가 공사를 1년간 멈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A사가 대상에 없다보니 수의계약 발주를 안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이를 ‘이권 카르텔’로 평가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LH는 퇴직자가 근무하는 업체와의 용역 계약 절차를 전면 중단하고, 국토부는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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