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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왕의 DNA

고세욱 논설위원


DNA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천재와 미치광이의 유전자는 다른가’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놀드 루드비히가 1000여명의 저명인사를 대상으로 10년간 추적 연구를 한 결과, 유명 작곡가의 10%가 조현병을, 시인의 약 77%가 우울장애를 앓았다. 천재 과학자의 9%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재와 광인을 선천적으로 가를 순 없다는 얘기다. ‘천재의 유전자, 광인의 유전자’를 쓴 필립 레일리는 유전자 즉 DNA가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반면 각종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불리는 사이코패스의 경우 인지의 여러 측면을 조정하는 뇌의 선조체 영역이 비(非)사이코패스에 비해 평균 10% 더 크다. 큰 선조체는 더 많은 자극을 원해 충동성을 증가시킨다. 선천적 차이가 없지는 않다는 결론이다. 다만 이 역시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가정교육, 환경, 사회 교류 등 후천적 과정의 중요성이 결코 작지 않다.

교육부 사무관 A씨가 ‘내 아이는 왕의 DNA’ 운운하며 초등생 아들의 담임 선생에게 갑질한 사실이 최근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자녀 담임을 아동학대로 신고했고(결론은 무혐의) 수차례 민원 끝에 직위해제 처분을 받게 했다. 이어 후임 담임 선생에게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하듯이 듣기 좋게 말하라’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 등 황당한 내용의 편지를 공직자 통합메일로 보냈다. 선생 두 명에게 연이어 갑질을 일삼은 것이다.

A씨는 사태가 커지자 13일 뒤늦게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21세기에 왕의 DNA를 운운하는 것도 우스우나 왕도 여러 부류가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세종과 같은 성군도 있지만 광해군 연산군 같은 폭군, 무능한 고종 등 수준 이하 왕들이 조선시대에 훨씬 많았다. 갑질 DNA로 무장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세종처럼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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