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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거북이 태풍

고승욱 논설위원


적도 인근 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은 무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움직인다. 이동속도는 시속 20∼25㎞다. 이 중 한반도로 오는 태풍은 대개 북위 20~30도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동풍이 부는 무역풍대를 벗어나 편서풍대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이후 이동속도는 시속 35∼40㎞로 높아진다. 북쪽으로 가면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져 속도는 더 빨라진다. 간혹 10㎞ 상공에 흐르는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1시간에 80㎞를 이동하기도 한다.

태풍은 바람의 세기를 기준으로 강도를 가늠한다.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54m를 넘으면 초강력, 강풍반경(초속 15m 이상 바람이 부는 지역의 반경)이 800㎞가 넘으면 초대형이다. 태풍 카눈은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30m이고, 강풍반경이 300㎞인 중형이다. 기상청은 태풍의 강도를 5단계로 나누는데, 중형은 뒤에서 두번째이니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카눈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동속도가 평균보다 현저히 느린 태풍이어서 그렇다.

지난달 28일 괌 인근 바다에서 발생한 카눈은 시속 7㎞로 북서쪽을 향하다가 지난 4일 밤 일본 오키나와 서쪽 해상(북위 29도)에서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이후 가고시마 인근에서 한반도로 방향을 다시 바꾼 뒤 속도가 시속 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유례 없는 폭염에 바닷물 온도가 식지 않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오고 있다.

이동속도가 느린 태풍은 폭우 피해가 크다. 2002년 시속 10㎞ 안팎의 속도로 상륙했던 태풍 루사는 강원도 강릉 898㎜ 등 전국에 물폭탄을 퍼부었다. 최대풍속은 역대 6위였지만 재산 피해는 최악이었다. 1991년 부산·경남에 500㎜가 넘는 폭우를 쏟아부어 사망·실종자가 103명에 달했던 글래디스도 느리게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이었다. 기상청은 카눈이 지나가면서 서울·인천·경기 최대 120㎜, 강원영동 최대 400㎜, 충남서해안 최대 200㎜의 비를 예보했다. 영남과 제주도에는 국지적으로 400㎜ 넘는 폭우도 예상했다.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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