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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책과 안식

우성규 종교부 차장


서울 종로구 서촌 한옥마을에 ‘호모북커스’가 있다. 북악산 너머 북한산까지 보이는 배화여중·고 바로 아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고풍스러운 ‘ㅁ’자 한옥에 들어서면 한옥 특유의 나무 향과 더불어 정성스레 수집된 2500여권 책의 향기가 느껴진다. 책과 함께 노니는 공간을 말하는 서유당(書遊堂)이 애칭이다. 1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한 권의 책과 더불어 특별한 쉼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한옥공유서재이다.

호모북커스는 이곳에서 북스테이를 진행한다. 해가 지고 난 저녁 7시쯤 들어가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최대 4인 정도의 가족이 머물 수 있다. 수시로 알림이 뜨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영상 기기는 한쪽에 치워놓고, 오롯이 책을 읽다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들어보는 경험을 한다. 도심 속 심야 서재, 서울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독서 오아시스, 영혼을 돌아보는 읽기 수도원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 여름 성수기라 냉방비 5000원이 추가돼 1박에 3만5000원이다. 바로 옆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서촌의 럭셔리 한옥스테이들이 하룻밤 숙박에 30만~40만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10분의 1 가격이다.

호모북커스 김성수 대표는 목회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이다. 호모북커스는 책 읽는 인간을 뜻한다. 텍스트를 통해 삶의 현장을 마주하며 사회적 아픔도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호모북커스 한옥공유서재의 벽에는 이곳의 정신을 대표하는 이슬아 작가의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헤엄) 속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강북에 호모북커스가 있다면 강남엔 ‘북앤레스트’가 있다. 책과 쉼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로 건물 1층 전체에 제법 큰 규모로 입주해 있는데 여느 북카페와 다르다. 말 그대로 쉼을 위해 두 다리 쫙 뻗고 누워서 책을 읽도록 구성돼 있다. 나무 부스마다 푹신한 쿠션이 준비돼 있다. 신발을 벗고 2층으로 올라가면 바닥에서 뒹굴며 책을 읽도록 안내한다.

북앤레스트는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다. 5만권 장서를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별마당도서관 인근에 굳이 이런 북카페가 성업 중인 건 이곳이 북보다는 레스트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코엑스몰 드넓은 쇼핑 거리를 걷다가 지친 커플이 데이트를 이어가기 위해 이곳에 들른다. 책보다는 쉼 때문에 들른 이들이 애정을 속삭이며 내는 소리가 책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독서 인구가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유대인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책 ‘안식’(복있는사람)은 그의 딸 수재너 헤셸이 부모님의 안식일 저녁을 묘사하는 글로 시작한다. 금요일 해가 지면 포도주잔을 들고 촛불을 켜던 이 가족은 닭고기 수프, 약병아리 구이, 샐러드와 과일 등으로 느긋한 만찬을 즐긴 뒤 책을 펼쳐 든다. 평소에 읽던 철학 정치 책들이 아니고 종교 문헌을 손에 든다. 안식일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과 자신을 생각하는 글을 읽고 묵상에 잠긴다. 이런 글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종교적으로 고귀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성장해 왔는지 절절히 느낀다.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과 깊은 교분을 이어간 헤셸은 안식일에 대해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현대 문명이 인간을 소모시키는 극한점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1주일에 하루, 일을 온전히 내려놓고 나와 창조주의 관계를 떠올리는 경험은 우리에게 영혼의 쉼을 제공한다. 휴가철 바가지 상술과 휴가지 교통 체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책과 함께하는 안식을 생각해봐도 좋겠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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