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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순살아파트 DNA

전석운 논설위원


‘순살아파트’의 원조는 1970년 4월 8일 붕괴된 와우아파트다. 서울 창전동 와우산 자락에 들어선 아파트는 건물 벽에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금이 갈 만큼 부실 공사로 지어졌다. 철근 70개를 써야 할 기둥에 겨우 5개를 집어넣었고 콘크리트는 자갈 섞인 모래 반죽이나 다름없었다. 5층짜리 아파트를 가파른 비탈에 6개월 만에 지어놓았으니 그야말로 날림이었다. 봄이 돼 땅이 녹자 지반이 내려앉았고, 넉 달밖에 안 된 아파트는 맥없이 무너지며 산 아래 판잣집 세 채를 덮쳤다. 아파트 주민 33명과 판잣집 주민 1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가수 조영남은 이 사고 후 공연장에서 ‘신고산 타령’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라고 바꿔 불렀다가 당국의 미움을 사 군대에 끌려갔다. 조영남의 풍자가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 이 사고는 총체적 부실과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판자촌을 허물고 시민아파트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인 공사는 낮은 원가와 관리 부재, 재하청 구조 속에 안전은 처음부터 도외시됐다. 최종적으로 하도급을 따낸 무면허 건설업자는 이윤 남길 생각에 자재를 왕창 줄이고 대충 지었다. 이 업자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부실은 와우아파트에 그치지 않았다. 시민아파트 434개 동의 80%가 보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시민아파트는 대부분 철거되거나 재개발됐다.

순살아파트 DNA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와우아파트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부실 공사라는 자기복제를 통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에서 철근 누락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된 것은 53년 전 와우아파트를 소환하게 만든다. 신도시개발과 공공임대주택개발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LH가 전단보강근이라는 핵심 철근이 빠진 아파트를 대거 짓고 있었다니 거대 공기업이 순살아파트의 역사와 혼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H의 안전불감증이 제2의 와우아파트를 만들까 두렵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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