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표 무더기 ‘순살 아파트’ 사태와 관련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하라”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발 빠르게 나섰지만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사태의 본질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은 지하주차장만 확인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을 무량판 구조로 지은 전국 LH 아파트 91곳 중 전단보강근이라는 필수 철근을 누락한 단지만 15곳이다. 6곳 중 1곳을 순살로 지은 것인데 이들 3곳 중 1곳꼴로 이미 사람이 살고 있다. 아찔한 일이다. 그중 하나인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 아파트는 지난해 4월 입주했다. 사람과 자동차가 숱하게 지나다녔을 바닥이 1년 넘도록 주저앉지 않은 건 천운에 가깝다.
LH는 순살 아파트 중 이미 입주한 단지에는 철근을 추가로 넣겠다지만 미봉책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이 정도 땜질로 충분하다면 5500억원을 쏟아붓는 GS건설의 검단 아파트 전면 재시공은 낭비라는 얘기 아닌가. 검단 재시공이 필요한 조치라면 이번에 적발된 15개 아파트 모두 허물고 새로 지어야 옳다.
LH 부실 아파트는 발주·설계·시공·감리 중 어느 단계 문제였든 모두 발주처이자 감독자여야 할 LH 책임이다. 검단 사고가 설계·시공·감리의 총체적 부실 때문이었다는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LH의 일 처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일갈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LH는 “다 같이 잘못했다”는 뜻으로만 해석했다. 민간 기업들은 이번에도 LH가 건축사사무소, 시공사, 감리사 같은 외주사에 책임을 떠넘길 것을 우려한다.
이한준 LH 사장은 전날 전단보강근 누락 사실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LH는 주택에 대해서 발주만 했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걸 변명이라고 하는가. ‘일을 맡은 업체들이 이렇게 엉망으로 할지 몰랐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LH의 무책임한 태도만 재확인시킬 뿐이다. 이 사장 말대로라면 LH는 존재 이유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했던 실무자도, 수장도 옷을 벗어야 한다.
발주만 하고 관심이 없었다면 지하주차장만 문제일 리 없다. LH 아파트 곳곳을 샅샅이 살펴야 한다. 15개 단지를 엉터리로 지은 LH의 말과 표정에서는 그 정도 책임감과 위기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제대로 된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면 심각한 안전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뒷짐 지고 나타나는 LH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강창욱 산업2부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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