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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6·25와 아리랑

고세욱 논설위원


2009년 1월 KBS ‘미녀들의 수다’ 설특집에 트로트 가수 장윤정이 등장했다. 한 출연자가 “외국인이 한국 어학당에서 처음 배우는 노래가 ‘아리랑’, ‘곰 세마리’, 그리고 (장윤정의 히트곡)‘어머나’다”라고 했다. 장윤정은 아리랑과 어머나가 동급인 것에 감격했다.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세계인들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상징 중 하나였다. 싸이와 BTS 노래보다 앞선 원조 K팝인 셈이다.

아리랑은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1896년 몇몇 잡지에 악보와 글을 남기며 국제사회에 처음 소개됐다. 아리랑의 국제화가 이뤄진 게 6·25 전쟁부터다. 한민족의 애환이 담긴 서글픈 곡조가 전쟁 참상을 접한 외국 군인들의 마음에 와 닿은 것 같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유엔군은 한국군 전우에게서 아리랑을 배웠고 나라마다 다른 군가 대신 전장에서 터득한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연대했다. 아리랑을 한국 국가로 생각한 군인들도 많았다. 미 7사단은 아리랑을 사단 공식 행진곡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1951년 위문공연 차 방한한 유명 재즈 가수 오스카 페티포드는 우연히 아리랑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앨범을 발매해 인기를 모았다. ‘아디동 블루스’란 이름인데 아리랑을 아디동으로 오인한 것이다.

수많은 용사들이 종전 후에도 아리랑을 잊지 못했다. 지난 4월 24일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질베르 호펠스씨는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6·25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이는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으며 아리랑을 불렀다. 영국 참전 용사 콜린 새커리(93)옹이 오늘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직접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참전 용사 60여명이 참석한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서명식을 마친 후 유엔군 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아리랑이었다. 70년 후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에서 울려퍼질 아리랑을 듣는 노병들의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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