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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관재(官災)

태원준 논설위원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 참사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검찰은 ‘인재(人災)’란 표현을 썼다. “과거 반복된 침수로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 있었음에도 담당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탓에 중첩적인 안전조치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인재였습니다.” 매뉴얼은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이행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부산 동구는 ‘지하차도 침수 대비 매뉴얼’과 ‘여름철 재난대응계획’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상황판단회의, 현장 담당자 배치, CCTV 모니터링, 교통 통제 등 호우특보 단계별 조치가 꼼꼼히 담겼다. 자동 출입통제시스템도 설치한 터였다. 물이 30㎝ 이상 차오르면 수위계가 감지해 입구 전광판에 ‘출입금지’ 표시를 하고 경광등을 켠다. 이런 이중 삼중 안전장치를 공무원들은 완벽하게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7월 23일 폭우가 쏟아진 저녁, 재난대응 책임자인 부구청장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호우경보가 발령됐는데도 술자리를 계속했다. 상황판단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현장에 배치된 사람도, CCTV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출입통제시스템은 3년째 고장 난 상태였다. 수위가 30㎝를 훌쩍 넘기는 동안 전광판도 경광등도 켜지지 않아 침수된 걸 모른 채 차를 몰고 진입한 시민 7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게 고장임을 공무원들은 알고 있었다. 알면서 고치려 들지도, 고쳐 달라고 예산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는 자연현상에 의한 재해에서 공무원에게 형사 책임을 물은 첫 사건이 됐다. 공무원 11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마 이 판결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3년 만에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서 똑같은 사고가 재발하자 인재를 넘어 ‘관재(官災)’란 표현이 등장했다. 과거 관아의 착취를 일컫던 말인데, 공무원이 부른 재해란 뜻으로 쓰인다. 재해의 책임 소재가 하늘(天災)에서 사람으로, 다시 공무원으로 변모했다. 이번에도 많은 공무원이 수사를 받게 됐다. 공무원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 왠지 천재지변보다 더 끔찍하게 들린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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