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들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는 ‘주취 폭행’과 다를 바 없는데, 폭행 수단이 자동차라는 점에서 피해가 더욱 크다. 대낮에도, 스쿨존에서도 음주운전 사고는 발생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에 가깝다.
2018년 12월 윤창호법 제정으로 음주운전자에 대한 제재와 처벌이 강화됐다. 이후 자동차보험제도도 변경돼 음주운전 사고의 경우 자동차보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운전자 스스로 대부분의 손해배상액을 부담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윤창호법 제정 이후 다소 줄어드는 듯했으나 2022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음주운전 재범률도 40%에서 하락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 사회는 술에 너그럽다. 과도한 음주가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음주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대하다. 술 마시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음주운전조차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음주는 그저 음주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쁜 음주 습관으로 곤란한 상황을 겪고도 다시 술을 마시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과음을 하게 되면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 술을 마시고 운전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사람도 일단 만취하면 처음의 결심은 간데없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만다. 이렇게 정상적인 판단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강화된 처벌 기준이나 손해배상 책임은 음주운전을 막지 못한다. 음주운전 재범률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처벌 자체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주운전을 하는 이유를 묻는 도로교통공단의 2021년 설문에서 경찰의 음주 단속이나 음주운전 후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 우려가 자신의 음주운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미친 영향은 각각 1.4%와 1.1%에 불과했다. 오히려 주차 위반에 따른 견인과 차량 손상이 걱정돼 음주운전을 하게 됐다는 응답이 1.9%로 더 높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전에 없이 강화됐음에도 처벌보다 견인이나 차량 손상을 더 걱정해 음주운전을 한다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처벌 강화가 실제 삶에 전혀 가닿지 않는 것이다.
음주 단속에 걸리거나 교통사고에 직면할 가능성은 과속이나 주차위반 단속에 걸릴 확률보다 낮은 게 사실이다. 처벌을 아무리 강화해도 적발 가능성이 낮거나 실제 제도 운영이 느슨하다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기 십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보험 측면에서 보면 음주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자동차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자동차보험의 가입 문턱을 음주운전자에게 무한정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주운전자가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시동잠금장치 장착 의무화가 논의되고 있다. 장착 의무화 대상을 음주운전 재범자로 제한해 재범률이 높은 음주운전에 대한 대응책으로 안성맞춤이면서 음주운전과 무관한 대다수의 운전자에게는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문제는 늘 제도의 느슨한 운영에 있다. 음주운전을 근절하기 위한 각종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만들어진 제도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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